필리핀 전문가 이지훈 경찰청 외사수사과 경감 "필리핀 교민들 신뢰 얻어 살인범 검거"
파이낸셜뉴스
2017.06.19 17:10
수정 : 2017.06.19 19:08기사원문
봉급 털어가며 37일간 범인 추격.. 현 코리안데스크 운영.지원 전담
지난해 10월 11일 필리핀 앙헬레스 지역 사탕수수 밭에서 한국인 3명이 머리에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팔.다리가 묶인 채였다. 현지 교민과 필리핀 경찰은 소식을 접하고 발칵 뒤집혔다.
필리핀에서도 강력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지만 수법이 잔인했다. 용의자는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
필리핀의 강한 햇볕에 얼굴이 다소 그을린 듯한 모습의 이 경감은 2년간 필리핀 '코리안데스크' 임무를 마치고 올 2월 한국에 돌아왔다. 이제는 모든 정보, 첩보가 모이는 경찰청에서도 필리핀 사건이 발생하면 그부터 찾는다. 막 30대 중반에 들어선 8년 경력의 간부후보생 출신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된 것이다.
이 경감은 2015년 앙헬레스에 파견될 때는 무서웠다고 한다. 그는 당시 "외사계 동기들까지 '가면 죽는다'고 뜯어말리니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 했다"고 한다.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70㎞ 떨어진 앙헬레스는 한국으로 치면 평택만 하다. 한국 교민이 많은 데다 유흥시설, 카지노가 밀집돼 강력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이 경감은 첫 파견 때는 '애송이'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강력범죄에 익숙한 2만여명의 한국 교민들은 당시 30대 초반에 불과한 그를 믿지 못했다. 그는 "사건이 터져도 교민들이 절대 말해주지 않았다"며 "어린 게 유흥가나 가서 놀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경감은 6개월간 '신뢰'와 '사람'에 집중했다. 그는 "새벽, 밤낮 가릴 것 없이 사건이 발생하면 출동하고 모든 민원을 들어주면서 서서히 교민들의 마음이 열렸다"고 말했다.
코리안데스크는 수사권이 없어 필리핀 경찰관의 도움도 절실했다. 그는 "처음 배치된 수사부서로 가니 다들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며 "에어컨은 전에 있던 파출소장이 떼갔다는 소리를 듣고 월급을 털어 에어컨을 사줬다"고 전했다. 이 경감은 A4용지, 전기비, 수사 차량비 등 수사진행 시 도움이 될 만한 자원을 모두 제공했다.
이 경감은 파견 1년 만에 한국 경찰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앙헬레스를 제 안방처럼 만들었다. 우리 경찰로선 쾌재였다. 교민의 제보도 쏟아졌다. 교민 사회는 좁기 때문에 작은 단서가 결정적인 제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감은 이를 바탕으로 청부살인사건부터 카지노를 둘러싼 이권 범죄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해결했다. 필리핀 경찰들은 사건 수사과정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경감과 한국 교민, 필리핀 경찰이 합동해 해결한 대표적 사건이 바로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이다. 단서는 필리핀 경찰이 제공했다. 이 경감은 "현지 동료들이 '사망한 사람들이 한국사람'이라고 사진을 줬다"며 "이때 지문검사를 시작으로 수사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 경감은 본격적으로 12명의 필리핀 현지경찰과 함께 수사팀을 꾸렸다. 필요한 비용은 모두 이 경감이 댔다. 교민들은 용의자의 이동경로를 계속 알려줬다. 이 경감이 범인을 여섯번 놓쳤지만 끝내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범인은 잡히는 순간까지 이 경감의 추격을 몰랐을 만큼 검거과정은 정교했다. 2012년부터 운영된 코리안데스크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자 이 경감에게는 '베테랑'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경감은 현재 한국에 돌아와 경찰청에서 코리안데스크 지원.운영을 전담하고 있다. 필리핀 현지에 투입된 경찰관과 경찰청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경찰청에서도 필리핀 파견과 지원.운영업무를 모두 경험한 사람은 이 경감이 유일하다. 그는 이를 토대로 '외사 전문가'가 되고자 한다. 그는 "경찰관이 된 이후 가장 값진 경험을 했다"며 "이 경험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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