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정치혁신을 원한다
파이낸셜뉴스
2017.07.24 17:27
수정 : 2017.07.24 17:27기사원문
한겨울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뼈 시린 겨울바다도 마다 않고 물속을 들락거리며 무언가 퍼 올리는 이들이 보였다. 제주 해녀다.
발만 담가도 찌릿함이 느껴지는 추위에 별다른 장비도 없이 어찌 저리 자유롭게 드나들까 궁금했다. 어떤 신비한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봤다.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흔히 '혁신'을 생각할 때 마법 같은 순간을 기대한다. 불현듯 찾아오는 '유레카!'의 순간처럼 갑작스러운 계기로 변하고, 파격적으로 개조해야 성공의 길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혁신은 해녀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는 꾸준함이 지속됐을 때 비로소 시린 겨울바다도 두렵지 않게 된다.
정치권이 또 혁신 타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조만간 '매머드급 혁신위원회'가 구성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로써 원내교섭단체 4당이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모두 혁신위를 구성하게 됐다. 이미 구성된 각 당 혁신위는 급진적 개혁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대선 패배로 정권을 내준 자유한국당은 '뚜렷한 극우화'를 선언했다. 제보조작 파문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국민의당은 '최고위원회 폐지'를 제안했다. 바른정당도 스탠딩 회의를 도입하는 등 '탈권위주의'를 위한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근본적 체질 개선이라기보다는 위기탈출을 위한 단기처방에 가깝다.
조심해야 한다. 자극적 형태의 혁신안일수록 그저 보여주기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한두 달 여론의 관심을 끌다 이내 소리없이 사라지곤 했다. 정당 위기 때마다 늘 혁신이 등장했지만 언제나 실패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정당개혁을 위해 서서히 바꿔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먼저다.
조급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해결하려 하면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100점짜리 혁신안을 내놓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좋다. 10점짜리일지라도 지속 가능한 혁신안이 나왔을 때 국민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국민 마음속으로 단숨에 들어갈 방법은 없다. 아서라. 당분간 욕먹을 각오는 해야 한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바뀌어야 한다.
golee@fnnews.com 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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