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파이낸셜뉴스
2018.01.10 16:52
수정 : 2018.01.10 16:52기사원문
새해 첫날 찾아간 동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처음 보는 분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인건비가 올라 아르바이트 직원이 그만두고 주인 아저씨 가족 되시는 분이 일하시는 거라고 했다.
다음 날 첫 출근길 항상 지나치는 주요소의 가격판을 보았다. 휘발유 가격이 드디어 L당 1600원을 넘었다. 불과 몇 달 전 1400원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이 가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나마도 싼 편이었다.
모든 물가가 갑자기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다. 책상에 놓인 신문에 작년 경제성장률이 3%를 넘어서고, 올해에는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는 구직 게시판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는 한 청년의 사진을 본다. 기사 타이틀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청년실업률'이었던 것 같다. 작년 5월 청와대 집무실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 앞에 대통령께서 미소를 띤 표정으로 시연하는 사진이 기억이 난다. 두 장의 사진이 자꾸 오버랩 된다. 근심 어린 표정과 미소를 띤 표정 말이다.
지금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고매한 정치 이념과 도덕적 통치철학을 가졌더라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의 마음은 멀어질 수 있다. 새 정부가 내놓은 많은 정책들이 정말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위한 것이다.
당연히 사회공동체라는 의미에서 우리가 돌보고 보듬어 안아야 했었다. 그러지 못했던 것을 새 정부가 나서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나머지 대다수 국민에게 좋아지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정규직 비중이 높아지면 기업들이 사람을 덜 뽑으려 하지는 않을까?
특히 가뜩이나 좁은 청년들의 취업문이 아예 닫히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정부의 새로운 정책은 돈이 있어야 가능한데 정부도 땅을 파서 돈을 만드는 것이 아닐 텐데, 대다수 국민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하지는 않을까? 그런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가 말하는 더불어 잘사는 포용적 복지국가도 좋다. 적폐를 청산하고 촛불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도 좋다.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드는 것도 물론 좋다. 다 좋은데, 좋기는 한데,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왜 가슴에 와닿지가 않을까? 아마 필자가 고매한 사회적 이상보다 먹고사는 문제만 중요시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필부여서 그런가 보다.
퇴근 후 집에 와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는데 대통령께서 새해인사를 하신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그것은 올해는 우리 국민들께서 '나라가 달라지니 내 삶도 좋아지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정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일단 새해 첫 출근 날 어렴풋이 느낀 것은 '국민들 중 최소한 한 명의 삶은 작년보다 나빠지겠구나'였다.
주 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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