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해외직구하다 고발당한 母情

파이낸셜뉴스       2018.02.02 17:43   수정 : 2018.02.02 18:10기사원문
1형 당뇨병 앓는 아들 위해 국내에 없는 연속혈당측정기 해외사이트 통해 공동구매
의료기기법 위반 조사받고 검찰에 소환될 상황 처해



국내 대기업 핵심 사업부 사원이었던 김미영씨. 김씨는 잘 다니던 회사를 2년 전 그만 뒀다. 당장 돈과 명예보다는 아이에게 전념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씨의 아들 정근우군(가명)군은 어릴 때부터 1형 당뇨병을 앓았다.

혈당 관리를 위해 하루에 10번 이상 피를 뽑고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다. 김씨는 이런 아들의 혈당 관리를 더 잘해주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다 해외직구로 좋은 의료기기를 구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이후 해당 기기를 필요로 하는 다른 부모들의 구입도 돕게 된 김씨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를 받고 곧 검찰에 소환될 상황이다. 김씨는 "국가와 기업이 신경쓰지 않는 아이를 내가 내 돈 써가며 챙겼는데 오히려 범법자로 몰리니 너무 억울해 눈물이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의료기기 공동구매 사연은?

김씨가 공동구매한 제품은 연속혈당측정기다. 혈당치와 혈당추세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는 기기로, 5분마다 혈당을 측정해 혈당치가 기록된다. 이 기기를 장착하면 1형 당뇨병 환자들은 아프게 손가락을 찔러 채혈할 필요 없이 수시로 혈당값을 측정하며 수면 중에도 사용이 가능하고 앱을 통해 휴대폰으로도 혈당치를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성능 좋은 연속혈당측정기를 국내에서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해외 A사, B사 제품은 정확도가 높고 소모품 비용이 덜 드는데다 착용도 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다. 개인이 해외에서 구매하려면 언어 제약도 따르고 처방전을 요구하는 곳도 많다.

이에 따라 김씨는 수소문 끝에 체코 사이트를 통해 다른 부모들과 함께 공동구매 형태로 A사, B사 제품을 국내에 들여왔다. 한국 1형 당뇨병 환우회에 따르면 연속혈당측정기 사용 후 자녀의 혈당 흐름이 좋아지고 관리가 수월해졌다는 부모들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김씨는 기기 공동구매 이후 해외에서 나온 기기 앱을 한글화해 다른 부모들과 공유했으며 배송 과정에서 납땜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된 작업이지만 자신의 노하우를 다른 1형 당뇨병 환자 가족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너무 억울하고 속상"

그러나 뜻밖에 시련이 닥쳤다. 누군가 김씨의 이같은 연속혈당측정기 구매 과정에서 관세법을 위반했다고 신고해 김씨는 세관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인천지검은 김씨와 다른 1형 당뇨병 환자 가족들의 사정 등을 감안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최근 김씨는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식약처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연속혈당측정기를 무허가로 수입.판매하고 하드웨어 무허가 제조 판매, 비허가 의료기기 광고 등을 한 혐의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의료기기법은 환자들을 위한 법이 아닌가. 국내 미출시된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한 뒤 혈당 관리는 물론, 삶의 질도 향상돼 어렵게 구해서 사용하는데 그것마저 막으면 누구를 위한 법인가"라며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1형 당뇨병 환자 가족들과 김재현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등 의료계 관계자들은 김씨에 대한 선처를 요구하며 탄원서를 썼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아당뇨 환우들의 수입 의료기기에 대한 의료기기법 완화를 요청합니다'는 글이 올라와 2일 현재 2만4000여명이 서명했다.

식약처는 김씨 사정은 알지만 국민신문고를 통해 신고가 들어온 것이어서 원칙대로 조사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조사 중이어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고 빠른 시일 내에 검찰로 넘길 예정"이라며 "다만 (김씨가 수입한) 두 제품 중 하나는 식약처 확인을 받고 자가사용용으로 6건을 들여와 쓰는 사람도 있는만큼 합법적 절차를 통해 제품을 수입할 수 있고 최종 판단은 검찰이 할 것"이라고 밝혔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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