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있는 레스토랑, 역사를 쓰고 있는 루프탑바

파이낸셜뉴스       2018.03.17 00:21   수정 : 2018.03.18 22:11기사원문

자카르타에 가볼만한 데가 별로 없어 쇼핑몰을 돌고 호텔에서 편히 쉬는 것도 좋은 여행 루트라고는 이미 밝혔다.( [자카르타, 어디까지 가봤니-2] 호캉스·몰링족을 위한 도시) 그런데 어떻게 우리처럼 열정적인 민족이, 놀때도 부지런하기 짝이 없는 민족이 비행기 타고 물건너 온 해외여행에서 몰과 호텔에만 머무를 수 있단 말인가. 기어코 관광지를 찾아내고, '세계 몇대 OOO'라고 이름 붙여 억지로라도 유명세를 물리고야 마는 우리가 아닌가.

인터넷을 부유하는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 짧은 일정 속에서 이동이 편하고, 사진만 봐도 '와 여긴 정말 외국 같구나. 간만에 콧바람 쐰 자랑을 하기에 딱이군'이라며 SNS 올리지 않고서는 못 배길 곳 딱 두군데만 가보기로 했다. 이게 다 출장 차 방문한 도시 자카르타 때문이다.

■네덜란드 식민 역사의 잔재 '바타비아'



카페 바타비아(Cafe Batavia). 검색이라면 뒤지지 않는 검색왕에게도, 그냥 자카르타 관광지나 한번 볼까 무심코 쳐 본 초보에게도 똑같이 가장 많이 검색되고 추천되는 곳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자카르타 구 시가지 올드타운은 자카르타가 '바타비아'로 불리던 때 번화하던 지역이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독립기념탑 모나스를 기준으로는 북쪽에 위치해 있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던 19세기 초반 자카르타는 바타비아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당시 핵심 지역은 꼬따(Kota)였다. 꼬따의 중심에는 파타힐라 광장이 있다. 유럽 어느 광장이라고 우기기까진 어렵겠지만 언뜻 사진만 보여주면 '인도네시아'라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처럼 유럽풍 건물들로 둘러싸인 모습이다. 이 광장 한쪽 편에 누가봐도 '내가 바로 당신이 찾는 그곳이라네'라는 느낌으로 서 있는 건물이 카페 바타비아다.



오랜 역사에 비해 식당 및 카페로 활용된 건 1990년대 들어서니 얼마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 있었고, 무엇을 위해 지어졌고와 같은 역사적 팩트도 중요하다. 하지만 일단 들어서면 밖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내부에 아예 시공간을 초월했다는 느낌을 보다 확실히 받을 수 있다. 비엔나나 뮌헨 같은 유럽의 역사 깊은 도시가 떠오르는 건 건물 양식이나 인테리어 소품도 있지만 후덥지근한 밖과 달리 쾌적한 공기도 큰 역할을 한다.

1층은 재즈 밴드 공연이 열리는 무대가 있고 흡연석이다. 비흡연석인 2층으로 올라서면 파타힐라 광장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커다란 창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고, 그 창 앞에 어김없이 테이블이 놓여져 있다. 자리에 앉은 시간 마침 해는 지고, 이 나라의 우기는 해가 지면 더 힘을 발하는지 출장 기간 내내 어두워지면 비가 내렸다. 이날도 역시 비가 내렸고 큰 창으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광장을 바라보는 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밖과 확실히 다른 분위기 만큼 가격도 다르다. 메인 요리 하나가 2만원선, 맥주 300cc는 대략 7천원이다. 20%의 세금과 봉사료가 포함된 가격이다. 매일 오후 8시부터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화려한 야경 핫스팟 '헨신바'



2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건물을 보다가 오픈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신상 루프탑바에 오르면 시공간을 교차하는 여행은 더욱 재미를 찾는다. '더 웨스틴 자카르타' 호텔 67층에 위치한 바에서 자카르타 최고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호텔은 지난 2016년 8월 첫선을 보였고, '그랜드 오픈'은 2017년 2월에 이뤄졌다. 루프탑바 헨신(Henshin)은 이제 고작 첫돌을 넘긴 떠오르는 핫스팟이란 말이다.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를 가면 여러 밤 중 꼭 하루는 루프탑바를 찾게 된다. 달콤쌉싸름한 위스키 한잔과 함께 즐기는 야경을 물론 한국보다 훨씬 싼 물가에 즐길 수 있어서다. 태국 방콕의 시로코(Sirocco), 베트남 호치민의 칠(Chill) 등은 이미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루프탑바다. 자카르타의 헨신도 곧 여러 기사와 포스팅을 통해 익숙한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어둠이 내려 앉으면 빈부격차는 보이지 않는다. 반짝이는 불빛에 그저 감탄하면 된다. 누군가 자본주의는 밤에 보면 아름답다고 했던가. 꽤 소리가 큰 라운지 음악도 하늘과 맞닿은 듯한 67층에서는 까맣고 습한 공기 중으로 금세 빨려 들어가 버린다.
11월부터 2월은 자카르타의 우기다. 역시 밤에는 비가 오지만 사방이 통유리인 이 바에서는 갑자기 내리는 비가 오히려 행운에 가깝다.

그나저나 자카르타 어디까지 가야하나. 4편 '나시고랭이 주는 평온함'으로 마치겠다고 예고해 본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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