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 강국' 일본의 물난리

파이낸셜뉴스       2018.07.09 17:16   수정 : 2018.07.09 17:16기사원문

일본이 지진보다 더 무서운 물난리를 겪고 있다. 일본 열도는 '불의 고리'인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해 지진이 빈번한 데다 태풍도 연례행사처럼 맞는다. 그런 만큼 일본은 방재에 관한 한 최강국이다.

하지만 기후현 구조시가 5일부터 총 1058㎜ 강우량을 기록하는 등 사흘 사이 한 달치 3배의 '물폭탄'이 쏟아지니 속수무책이었다. 9일 현재 사망.실종자만 170여명에 이르는 등 열도 남서부가 쑥대밭이 됐다.

일본의 자연재해 대비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모양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현지 방송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위험성을 알리는 등 기계적으로 대응한 게 전부였다. 워낙 전례 없는 집중호우이기도 했지만 관민 모두 설마하다 피해를 키운 형국이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남서부에 거주하는 863만명의 주민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이번 일본 수해를 보면서 천려일실(千慮一失)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즉 "지혜로운 사람도 천 가지를 생각하다 한 가지 실수는 한다"는 뜻으로, 한 고조 유방을 도와 중원을 제패한 한신에게 참모인 이좌거가 한 조언이다. 천변만화하는 대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은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재해 예방대책을 세우는 데도 겸손하게 중지를 모아야 만에 하나 뒤탈이 적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우리가 이번에 일본을 초토화시킨 태풍 쁘라삐룬이 한반도를 비켜간 데 대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는 아닐 듯하다. 기상청은 올해 6월부터 호우경보 발표기준을 6시간당 110㎜에서 3시간당 90㎜로 변경 시행키로 했다고 한다. 수해 가능성 등을 시간대별로 더욱 정밀히 예측해 미리 대비한다니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평소 국가 차원의 치산치수로 재해를 최대한 예방하는 것이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며칠 전 경북 청도의 산사태는 전문가의 중의를 무시한 독단적인 정책의 위험성을 일깨운 반면교사다. '태양광=친환경 에너지'라는 그릇된 도그마에 빠져 산비탈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 태양광발전소를 짓다 초래한 재앙이기 때문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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