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기다려 방문…“엄마, 나 대통령 되고 싶어”

파이낸셜뉴스       2018.09.22 08:30   수정 : 2018.09.22 11:29기사원문

청와대를 관람하면 작은 기념품을 받는다. 어른은 머그컵, 아이는 목걸이형 카드지갑이다. 지갑은 적갈색 또는 파란색 인조가죽 재질로 만들어졌다.

청와대 로고도 멋스럽게 그려져 있다. 2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 앞. 기자와 같이 청와대를 관람하던 8살 남짓 된 여자 어린이가 카드지갑을 한 손으로 잡고 펼쳐보였다. 가슴 속 무언가 뭉클함을 느꼈는지 비장하게 외쳤다. “엄마, 나 대통령 되고 싶어”



청와대를 구경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출근을 청와대로 하지만 내부를 제대로 구경해 본 적은 없다. 청와대 출입기자라 할지라도 기자회견장이 있는 춘추관 건물을 제외하고는 규정상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청와대 관람은 예약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 엄청난 인기다.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직접 예매해본 적은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난이도가 아닐까 싶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히 초등학생 아이들을 둔 부모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나홀로 관람 신청이었기에 운 좋게 두 달 뒤 날짜를 바로 예약할 수 있었다. 두 명 이상이 함께 신청하는 경우엔 석 달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청와대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최소한 계절 하나 정도는 보내야 갈 수 있다는 말이다.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 덕분에 흥행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22일 기준, 올해 청와대 관람은 이미 ‘매진’ 됐다. 신청 가능한 가장 빠른 날은 내년 1월 31일이다.



관람 하루 전, 청와대에서 문자가 왔다. 간단한 안내사항과 함께 ‘방문 시 서신, 선물 전달 불가’라는 주의사항이 담겼다. 아쉽지만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관람 시 전할 수 없다. 가슴에 잠시 담아놨다가 ‘국민청원’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관람 당일, 신청 시간 오전 11시에 맞춰 경복궁 동측 주차장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은 아니었지만 우산을 써야만 했다. 습도도 무척 높아졌다.

시간 맞춰 도착했다고 관람 버스에 바로 탑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호출번호를 받아야 한다. 이어 주차장 한쪽에 마련된 관람 쉼터에 들어가 대기했다. 날씨는 자꾸 후텁지근해지는데 쉼터 내부에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불쾌감이 들려던 찰나 주변을 둘러봤다. 기자를 제외한 모두가 잔뜩 설렌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70대 할아버지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3대가 함께 관람을 왔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왔다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이들은 화면 속 대통령 모습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머쓱하게 번호표를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15분쯤 지나자 번호가 불렸다. 드디어 버스 탑승이다.



버스는 경복궁을 한 바퀴 돌아 춘추관 춘추문 앞에 내렸다. 입구에 도착하면 소지품 검사가 이뤄진다. 공항 검색대만큼이나 철저하다. 가방과 주머니 속 소지품까지 검사한다. 경복궁 주차장에서부터 청와대 입장까지 절차가 꽤나 복잡하다. '주차장 1차 신원확인→버스 안 2차 신원확인→입구 소지품 검사' 등 3단계 확인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도 관람객 누구하나 표정을 찡그리지 않았다. 대통령 있는 곳을 방문하는 것이니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검색을 마치고 홍보관에 들어서면 2분짜리 짧은 청와대 소개 영상을 감상한다. 영상 말미 문 대통령의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멘트가 나오자 일부 관람객들은 작은 박수를 보냈다. 찰나의 순간에 강렬한 감동을 맛본 듯 보였다.



‘친구 같은 대통령’의 모습은 관람객들의 관람 코스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90여명이 한 조를 이룬 관람객은 '녹지원→구 본관터→본관→영빈관→칠궁→사랑채'를 차례대로 둘러본다. 놀라운 것은 건물 바로 앞까지 가서 구경하고 사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청와대가 아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코스가 짜여져 있다.

함께 동행한 대통령 비서실 소속 문화해설사는 "지난 정권까지만해도 본관에서 200m 떨어진 지점에서만 관람이 가능했다"며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근접 관람과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코스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녹지원 부근을 걷는 3분 동안은 짧은 시간이지만 상쾌한 산림욕을 체험해볼 수 있다. 해설사는 "이 곳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수백년전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적어놓은 돌덩이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관람객들은 "좋은 기운 많이 받아가야겠다"며 여러번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어른들은 뉴스 속에서 보던 곳이 이곳인지 저곳인지 맞춰보기 시작했다. 해설사의 역사적 배경 설명에도 쫑긋 귀를 기울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신이 났다. 자세히는 몰라도 대단한 곳에 와있는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한 남자 초등학생 어린이가 부모님 손을 잡고 연신 질문을 쏟아냈다. "아빠, 청화대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학교도 안다니나?"와 같은 다소 황당한 질문도 있었다. 아버지는 '청화대'가 아닌 '청와대'라고 바로잡아주는 대신 옅은 미소만 보였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흐뭇해하는 모습이었다.



청와대 관람을 마친 한 30대 부부는 "청와대라고 하면 굉장히 대단하고 신성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생각보다 소박하고 사람냄새 나는 모습에 놀랐다"면서 "역사 공부도 덤으로 많이 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중국 상해에서 왔다고 밝힌 20대 여학생은 "중국에서 주석궁을 관람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매일 이 많은 관람객들에게 대통령의 흔적을 공개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게 무척 놀랍다"고 소감을 전했다.

golee@fnnews.com 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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