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분배방식
파이낸셜뉴스
2018.10.07 17:10
수정 : 2018.10.07 17:10기사원문
권투시합을 보면 체급별로 다른 양상을 볼 수 있다. 헤비급 선수들은 별로 움직이지 않다가 한두 번 펀치로 KO 시키는 반면, 경량급 선수들은 쉴 새 없이 펀치를 날리곤 한다. 만일 개런티 지급기준을 펀치 횟수로 한다면 헤비급 선수들은 얼마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헤비급 선수의 펀치 한 방은 경량급 선수의 펀치 여러 방과 맞먹는 '규모의 경제'가 있어 펀치 횟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경량급 권투선수의 개런티를 헤비급 선수의 펀치 횟수만큼만 주겠다는 것과 유사한 정책이 어느 지자체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책이 '세금을 돌려준다'는 미명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도 솔깃하기 쉽다는 것이다. 100억원을 넘는 공사, 즉 헤비급 선수에게 적용되는 '표준시장단가'를 100억원 미만 공사인 경량급 선수에게까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표준품셈 방식은 품셈에서 제시한 수량(재료, 노무, 경비)에 단가를 곱하는 원가계산 방식을 말하고 표준시장단가는 결과물의 입찰가격, 계약가격 및 실제 시공가격을 조사해 만들어지는 방식을 말한다. 표준품셈 방식은 펀치 횟수를 기준으로 개런티를 주겠다는 것이고, 표준시장단가는 한 방이 있는 선수가 거둔 전적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듯 선수 각자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지급하던 개런티를 경량급 선수에게 불리한 헤비급 선수 방식으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줄인 비용(사실은 경량급 선수에게서 뺏은 개런티)을 전혀 엉뚱한 곳에 선심성 비용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표준품셈보다는 표준시장단가가 다소 낮게 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표준시장단가가 표준품셈보다 낮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산정방식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규모의 경제'가 있는 대규모 공사를 기준으로 산정됐기 때문이다. 산정방식이 아니라 그 방식을 적용한 대상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사단가를 낮출 수 있는지와 관련해 가격산정방식은 허위변수다. 공사의 단가를 결정짓는 것은 공사 규모이기 때문이다. 표준품셈 적용을 받는 소규모 건설업자 또한 국민이다. 그들이 있기에 공사현장이 생겨나고 일자리가 생긴다.
최근 들어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불합리한 게임의 룰로 쥐어짠 비용을 공공이 재분배하는 것과 업역에 맞는 적절한 대가를 민간이 임금 형태로 분배하는 것 중 어떤 방식이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지지를 잃은 건설업계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당한 주장이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당하는 현실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고 한 플라톤의 혜안과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고 한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일갈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갖는다는 것은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닐까.
우윤석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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