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사피엔스 시대, 역사가 주는 교훈
파이낸셜뉴스
2019.04.17 17:02
수정 : 2019.04.17 17:02기사원문
이웃나라 일본은 5월 1일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하면서 연호도 레이와(令和)로 바꾸고 지폐에 넣는 인물도 교체하는 등 새로운 왕에 걸맞은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분주하다. 그런데 일본의 가장 고액권인 1만엔권에 선정된 인물이 한반도 경체침탈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국내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일본 경제 근대화의 최대 공헌자라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그는 은행을 기반으로 도쿄전력, 기린맥주 등 무려 500곳의 기업 창업에 관여하며 일본 자본주의의 기틀을 쌓은 인물이다.
그 이전 40년간 1만엔권을 지킨 후쿠자와 유키치는 유럽에서 신문명을 배운 일본 개화기의 계몽사상가로 일본의 자유주의, 공리주의적 가치관을 확립하고 메이지유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을 통해 일본이 1차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화 과정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가장 뼈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일본은 대한제국 침탈 이후 우리에게 참 나쁜 짓을 많이 한 나라인 게 명백하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에서 보자면 1850년 이후 그들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수천년 동안 아시아의 작은 섬나라에 2류 국가로 폄하받던 일본이 불과 40년 사이 국격이 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대륙에 신문명이 출몰하면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는지 역사를 통해 체험했고, 그 교훈을 잊지 않으려 신문명을 받아들인 두 인물을 최고액 지폐에 새겨 기념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반면 조선은 기득권 보호를 위해 쇄국을 선택한 탓에 이후 100년간 피로 얼룩진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줘야 했다. 대륙에 신문명이 등장했을 때 역사의 교훈은 이처럼 명료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발 하라리가 언급했듯 호모사피엔스 역사의 일관된 교훈이기도 하다.
작금의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미국과 중국 대륙에는 포노사피엔스 신문명이 혁명을 일으키며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우리 기득권층은 규제의 방벽으로 쇄국에 여념이 없다. 정치권은 좌우로 갈라져 아귀 다툼에 정신이 없고, 국가지도자로 발탁된 장관급 인사들은 국민이 우선이다 하면서 뒤로는 자기 자식, 자기 재산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1850년의 조선에서 도대체 어떤 교훈을 얻은 것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기득권을 지켜주려 대륙에 찾아온 신문명을 다시 쇄국으로 막으면 이후 100년 우리 아이들이 피로 갚아야 한다. 일본 지폐 속 인물들을 곱씹어 보며 역사의 준엄한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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