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고등학교때 시작했지만, 해외 발레단 수석무용수됐죠"
파이낸셜뉴스
2019.04.25 11:42
수정 : 2019.04.25 11:42기사원문
'신데렐라'로 14년만에 내한하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 금의환향
내적동기가 재능을 견인하면,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도 자기분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안재용(27)이 주는 메시지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가 국내 초연 이후 14년 만에 오는 6월 12~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2005년 ‘맨발의 신데렐라’, ‘고전의 진화’등 호평세례를 이끌어낸 그 작품이다.
그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 발레리노 안재용의 활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안재용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 ‘백야’의 주인공, 발레리노 마하엘 바리시니코프에게 한눈에 반해 발레를 시작했다.
■ 영화 '백야' 보고 달라진 인생, 고등학교 1학년 말 인문계->예고 진학
안재용은 서면 인터뷰에서 “어릴 적 각종 운동, 악기, 그림 등을 배웠고, 스노보드뿐만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 성악, 오보에 등을 취미로 했다”며 “고1때 누나가 언뜻 나에게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니 발레를 하면 어울리겠다고 말했는데,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는 당시 성형외과 의사를 꿈꿨다. 우연히 화상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재건성형에 관심 갖던 중 누나가 자신의 방에 슬쩍 나두고 간 ‘백야’의 DVD를 보고 인생항로가 바뀐 것이다.
“남자 무용수가 어떻게 이렇게 멋있을 수가 있지. 바로 발레를 시작했다. 그때가 고1에서 고2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당시 집이 부산이어서 2학년 때 부산예고로 전학을 갔고, 3학년 때 다시 선화예고로 전학했다. 그리고 한국예종에 입학했다.”
‘발레 뤼스’의 전통이 잇고 있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전설적인 할리우드 스타에서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1929~1982) 후원에 힘입어 성장했다.
‘발레 뤼스 드 몬테카를로’ 해산 이후 발레단을 만들기를 희망한 켈리는 발레단 설립 전 단계로 발레학교를 세웠다. 바로 모나코로열발레학교.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등 무용수를 배출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켈리 사후 맏딸인 카롤린 공녀가 1985년 설립했다. 명문 발레단으로 지금의 명성을 얻은 데는 1993년부터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공이 크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 ‘신데렐라’(1999), ‘라 벨(잠자는 숲속의 미녀)’(2011) 등 고전을 참신하게 재해석한 작품들이 각광을 받으며 해외 쟁쟁한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 2016년 몬테카를로 입단, 2년 만에 수석무용수
2016년 몬테카를로에 입단해 군무(코르드발레)로 시작한 안재용은 입단 첫해부터 주요 배역들을 잇달아 연기한 뒤 2017년 세컨드 솔로이스트로 승급했다. 이후 마이요 감독의 신뢰로 2018년 여름, 수석무용수의 영예를 안았다.
단기간에 수석무용수가 된 비결은 무얼까? 안재용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면서도 "발레마스터가 나의 리허설 태도나 방식을 아주 좋아했다고 들었다. 한번 얘기하면 그 다음에 완전히 고쳐서 오고, 또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나의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왔다고 한다. 그런 점이 어필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감사하게도 입단하고 나서 처음부터 중요한 배역을 많이 주셨다. 나의 예술세계를 펼칠 기회를 많이 주셨다. 마이요 선생님의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마이요의 손길을 거친 ‘신데렐라’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신데렐라와 다소 다르다.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유리 구두, 호박마차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무도회장에서 왕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신데렐라의 발에는 아무 것도 신겨져 있지 않다. 그냥 맨발이다.
안재용은 “발이 이번 공연의 감상 포인트”라고 했다. “모든 건 발에서 다 이루어진다. 동화에서는 유리구두가 이야기의 포인트인데, 몬테카를로 버전에서는 ‘맨발’이다. 신데렐라 발의 금가루가 유리 구두를 대체한다. 무도회 장면에서 여자들이 왕자에게 구혼을 요청하는데 왕자는 그녀들의 ‘발’만 본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마이요의 안무는 어떻게 다를까? 그는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답했다.
“무대 장치나 의상들을 보면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장면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 음악을 해석하는 느낌도 굉장히 정확하면서도 특별하다. 특히 인물들 간의 감정묘사를 볼 때면 단순한 발레무대가 아닌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몬테카를로 옷을 입은 한국인 무용수, 가장 나다운 모습 보여주고파"
그야말로 금의환향이다. 그는 “너무나 기쁘다”면서 “이번 공연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물론 제가 어떤 무용수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무용수가 몬테카를로의 옷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한국인 무용수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 무대에 설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무용수에게 인정받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바랐다. “외적인 인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얻을 수 있지만, 무용수에게 인정받는 것은 진정한 실력과 인품을 갖춰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에게는 어떤 무용수로 기억되길 바랄까? 그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자신의 춤을 보고 "관객이 영감을 얻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살아가길" 바랐다.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은 꼭 춤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거나, 노래, 그림 등 아주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해외로 나와 가장 크게 느낀 차이가 자기표현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다름에 대한 토론이 일상적으로 열린다.”
어릴 적 아이들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는 등 예술 활동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예술 행위자와 즐기는 자 사이에 경계가 생기고, 예술을 잊고 산다. 하지만 누구나 예술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본질을 안재용이 상기시켜줬다.
안재용의 인스타그램에 가면 그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치열하게 산 시간을 그의 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동시에 그 몸을 자신의 표현도구로 얼마나 '자유롭게' 활용하는지 느낄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몸의 언어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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