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르고뉴 와인값.. 그 뒤엔 희소성과 투기가
파이낸셜뉴스
2019.05.09 16:16
수정 : 2019.05.09 16:29기사원문
'로마네 꽁띠' 한병에 55만8000달러(6억6900만원)…. 지난해 10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열린 1945년산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로마네 꽁띠' 한 병 가격입니다. 와인 경매 사상 최고가로 종전 기록이던 2억6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은 가격입니다. 1945년 빈티지는 세계대전이 끝난 해여서 서양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해인데다 전쟁을 겪으면서 로마네 꽁띠의 평소 생산물량의 10분의 1 수준인 600병 밖에 생산되지 않은 희소성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상징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요즘 부르고뉴 와인 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부르고뉴 와인이 오르는 이유는 세가지 입니다. '한정 생산에 따른 희소성', '유명 평론가의 호들갑', '중국인의 묻지마식 투자'가 겹쳐지면서 이제 일부 유명 생산자가 만드는 와인은 부르는게 값이 됐습니다.
■세계 최고가 와인 상위 10개 중 7개 휩쓸어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상위 10개 중 7개는 부르고뉴 와인입니다. 런던국제와인거래소(Liv-ex)가 2017년 6월 보르도 와인을 비롯한 전 세계 와인을 대상으로 한 상자(750ml 12병)당 실거래가격을 바탕으로 새롭게 등급을 매겼는데 부르고뉴 와인이 싹쓸이를 했습니다.
역시 가장 비싼 와인은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RC)'가 생산하는 '로마네 꽁띠(Romanee Conti)'였습니다. 한 상자 가격이 무려 9만8732 파운드(1억5056만원)로 한 병당 가격은 1254만원이었습니다. 시중에 팔리는 소매가격은 3000만원 안팎에 달합니다.
이어 DRC의 '라타슈(La Tache)'가 2만3340 파운드(3559만원)로 한 병당 296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이외에도 DRC의 리쉬부르(Richebourg), DRC의 로마네 생 비방(Romanee Saint Vivant), DRC의 그랑 에쎄조(Grand Echezeaux), 아르망 루소의 샹베르탱 클로 드 베제(Clos de Beze), DRC의 에쎄조(Echezeaux) 등이 10위 안에 랭크 됐습니다.
■"부르고뉴 와인 좋아하면 가산을 탕진한다"
나머지 3개는 미국을 대표하는 컬트와인인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이 2만610파운드로 3위에 오른 것과 보르도 우안의 생떼밀리옹 와인인 페트뤼스(Petrus)와 르 팽(Le pin)이 10위안에 오른게 유일합니다.
일반인에게 유명한 보르도의 특급와인 라피트 로췰드(Lafite Rothschild)는 5533파운드, 라뚜르(Latour)가 4964파운드, 마고(Margaux)가 4299파운드를 기록해 부르고뉴 DRC 와인 앞에서는 명함조차 못내밀 정도입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하게 되면 가산을 탕진한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우스갯 소리로 하는 얘기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부르고뉴 와인 등급은 그랑크뤼(Grand Cru), 프리미에 크뤼(Premier Cru), 빌라주(Village), 레지오날(Regionale) 이렇게 4개 등급으로 나뉩니다. 웬만한 빌라주급 와인만해도 한 병에 10만원이 넘어갑니다. 프리미에 크뤼나 그랑크뤼로 올라가면 50만원 안팎에 달하며 유명 생산자일 경우는 100만원은 가볍게 넘깁니다. 반면, 보르도 와인의 경우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은 5만~30만원 수준이니 상대적으로 저렴(?)해보이기까지 합니다.
■한정된 생산량의 희소성이 폭등 부추겨
부르고뉴 와인은 왜 이처럼 비쌀까요. 부르고뉴 와인은 보르도 와인과 다르게 한정판이라는 개념, 즉 '희소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1936년 제정한 부르고뉴 와인등급은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아니라 아예 포도밭에 등급을 고정해놨습니다. 즉, 아무리 찾는 사람이 많아도 가격이 두세배 올라도 생산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보르도 와이너리는 생산자가 다른 땅을 사 와인을 만들면 해당 등급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지만 부르고뉴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랑크뤼는 부르고뉴에 있는 수만개의 포도밭 중 겨우 33개로 전체 생산량의 1.4%에 불과합니다. 또 프리미에 크뤼도 635개으로 한정적이며 전체 생산량의 10.1% 수준입니다.
세계 최고가 와인을 생산하는 DRC의 로마네 꽁띠 밭은 1.85ha로 겨우 축구장 2개가 채 안되는 규모입니다. 1년에 500상자(6000병)만 생산됩니다. 이 포도밭은 1512년 경작 이래 단 한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보르도는 1등급 와이너리 한 곳당 평균 수십만병을 생산됩니다. 생산량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 이같은 희소성이 가격의 차이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네 꽁띠를 만드는 DRC 와이너리 경영자인 오베르 빌렌느는 매년 고객들로부터 구매의향서를 받아 로마네 꽁띠를 마실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심사해 아주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팔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에서 돈 많은 와인 애호가는 물론이고 이 와인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까지 가세해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유명 생산자의 와인 값은 천정부지
부르고뉴 와인의 가격이 자꾸 오르는 또 다른 이유는 유명 생산자가 만드는 와인이라는 희소성도 있습니다. '부르고뉴의 신'이라 불리던 와인 양조자 '앙리 자이에(Henri Jaier)'가 2006년 타개한 후 그가 만든 와인들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그가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1985년 리쉬부르는 한 병에 무려 1만5195달러(1773만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부르고뉴에서 그에 못지않은 명성을 지닌 '르로아(Leroy)' 여사의 와인도 수년전부터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86세가 되는 나이여서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이유로 그녀의 와인을 사 모으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 평론가들의 다소 호들갑스런 평론도 큰 역할을 합니다. 와인이 생산되면 "근래에 유래없는 최고의 빈티지"라고 호들갑을 떨고 그 다음해에는 "그 전년도에 못지않은 작황"이라며 와인 애호가들을 자극합니다. 그 해에 한번 생산되면 다시는 똑같은 와인이 나올 수가 없는데다 한 해에 생산되는 양도 적어 서로가 앞다퉈 웃돈을 주고 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중국인 등 아시아인의 속물근성도 한 몫
여기에 속물 근성이 가득한 중국인들이 가세하면서 가격은 더 오르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와인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와인을 수집의 대상으로 삼는 고급 취미생활 쪽이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워낙 큰 손들이 많아 프랑스 고급 와인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한다고 합니다. 2007년 말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 면세점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무려 우리 돈으로 6000만원어치의 와인을 사 화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와인을 소재로 한 일본의 유명 만화작품 '신의 물방울' 이후 일본인들의 부르고뉴 사랑도 한 몫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권 거부들은 2000년, 2005년, 2010년 등 그레이트 빈티지로 소문난 와인을 얻기 위해 유럽의 와인상들에게 백지수표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니 프랑스 와인, 특히 부르고뉴 와인의 콧대는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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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영원한 라이벌 보르도와 부르고뉴'가 이어집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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