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깬 혁신.. 사시카이아 수퍼투스칸 시대를 열다

파이낸셜뉴스       2019.06.06 18:12   수정 : 2019.06.06 20:45기사원문
(3) 와인의 경제학 
틀을 깬 사시카이아
보르도 와인 상상하며 만들었지만 첫 시도, 기대 완전히 빗나가
까베르네 쇼비뇽·프랑·멜롯으로 새롭게 블렌딩하고 프랑스산 바릭 숙성
'품질혁신' 거듭하며 '슈퍼스타' 와인으로

진한 루비빛에 숨겨진 강렬하고 부드러운 타닌, 장미꽃을 안고 있는 듯한 진한 꽃향기와 그와 어우러지는 독특한 스파이스.

미국의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2018년 100대 와인'을 선정하고 이 와인을 1위로 꼽자 전문가들은 이 와인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바로 이탈리아 토스카나 수퍼 투스칸(Super Toscana)의 효시가 된 테누타 산 구이도(Tenuta San Guido)의 '사시카이아(Sassicaia)' 입니다. 와인업계의 미쉐린 가이드로 불리는 와인 스펙테이터는 '사시카이아 2015 빈티지'를 1위로 선정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사람을 닮은 수퍼 투스칸

1968년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온 사시카이아는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이탈리아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와인입니다. 까베르네 쇼비뇽 85%, 까베르네 프랑 15%. 사시카이아의 블렌딩 비율입니다. 이탈리아가 자국의 와인에 대해 정하고 있는 DOCG(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Garatita), DOC(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와 전혀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 규정은 이탈리아 토착 품종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일정 비율(10%)의 청포도를 포함해야 하고, 숙성기간도 최소 2년 이상 슬로베니아산 긴 나무통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시카이아는 이탈리아 토착품종도, 슬로베니아산 긴 나무통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보르도가 원산지인 까베르네 쇼비뇽, 까베르네 프랑을 사용하고 프랑스 산 바릭에서 숙성시킵니다. 그냥 완전히 보르도 와인입니다.

토스카나의 대표 품종인 산지오베제를 바탕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들은 "제대로 된 산지오베제 와인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보르도식 와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폄훼했지만 사시카이아는 출시되자마자 놀라운 품질로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 와인시장을 충격에 빠뜨립니다.

사시카이아, 처음엔 평범한 와인으로 출발

사실 사시카이아의 첫 시도는 그리 혁신적이지 않았습니다. 사시카이아를 만든 '테누타 산 구이도'의 마르케스 마리오 인치자 델라 로케타(Marchesi Mario Incisa della Rocchetta)는 프랑스 유학 시절 즐겨 마시던 보르도 와인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국의 갈등으로 인해 마실수 없게 되자 1944년부터 토스카나 볼게리(Bolgheri)에 있는 자갈이 가득한 자신의 포도밭에서 보르도 포도 품종을 심어 재배하기 시작합니다. 묘목은 프랑스 보르도의 5대 샤또 중 으뜸으로 꼽히는 '샤또 라피트 로췰드'에서 가져온 까베르네 쇼비뇽이었습니다.

1948년 사시카이아가 처음 탄생했지만 기대와 달리 그 품질은 정말 실망스러웠다고 합니다. 보르도 재배 방식처럼 포도나무 수확량도 인위적으로 줄이고 프랑스 산 오크통까지 썼지만 보르도에서 마셨던 와인 맛은 나지 않았습니다.



전통 뒤집은 혁신… 이탈리아 와인업계가 충격

그러던 중 1965년 사돈지간이던 이탈리아 유명 와이너리 '안티노리'의 주인인 쟈코모 타키스(Giacomo Tachis)의 컨설팅을 거치면서 이 와인은 완전히 새로운 와인으로 탄생합니다. 쟈코모의 조언으로 까베르네 쇼비뇽 포도를 다른 밭으로 옮기고 까베르네 프랑과 멜롯을 섞으면서 환상적인 와인으로 바뀐 것이죠.

이렇게 만들어져 1968년 출시된 사시카이아는 이탈리아 와인업계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이탈리아 토착 품종이 아닌 까베르네 쇼비뇽,까베르네 프랑, 멜롯을 활용한 블랜딩 기법과 프랑스 산 오크통을 사영힌 숙성 등을 통한 마리오의 '혁신'은 다른 와이너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토스카나의 불모지로 불리는 중부 구릉지인 볼게리에서도 이처럼 뛰어난 와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그야말로 '쇼크', 그 자체였습니다. 이어 1971년 안티노리의 쟈코모가 티냐넬로를 출시하고 그 중 가장 좋은 포도만을 골라 사용한 솔라이아를 내놓으면서 이탈리아 전역의 와인산지에서 혁명적인 품질 혁신운동이 시작됩니다.

사시카이아는 2013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사시카이아 DOC'을 받게 되면서 또 한번 새로운 역사를 씁니다. 볼게리 DOC가 있지만 사시카이아 제조방식에 DOC를 인증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시카이아 DOC 인증은 까베르네 쇼비뇽을 메인 품종으로 80% 이상 사용해 블렌딩으로 와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바다 건너 미국서도 메리티지 와인 탄생시켜

수퍼투스칸의 혁신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나파밸리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케인 파이브(Cain Five), 오퍼스 원(Opus one), 도미누스(Dominus), 인시그니아(Insignia) 등 이미 일반인이 접하기 쉽지않은 명품 와인으로 자리잡은 '메리티지(Meritage) 와인'이 그 것 입니다.

미국의 와인생산규정은 AVA(American Viticultural Areas)를 통해 그 지역명을 적은 곳에서 생산된 포도를 85% 이상 사용해야 하고,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포도품종 75%를 포함해야 합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이같은 규정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주 품종 비율을 낮추거나 다른 두가지 이상의 품종을 섞으면 맛이 더 좋아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메리티지 와인은 이 AVA 규정을 지키지 않고 빚은 특급와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레드와인에 까베르네 쇼비뇽, 멜롯, 말벡, 까베르네 프랑, 쁘디 베르도 등 다양한 품종을 섞습니다. 케이 파이브의 경우만 보더라도 까베르네 쇼비뇽 비율을 47%로 낮추고 멜롯 25%, 까베르네 프랑 24%, 쁘띠 베르도 4%, 말벡 3%를 섞어 만듭니다.
인시그니아는 까베르네 쇼비뇽 84%, 쁘디 베르드 10%, 멜롯 3%, 말벡 3%의 비율로 블렌딩 됩니다. 오퍼스원도 까베르네 쇼비뇽 80%, 쁘디 베르도 7%, 까베르네 프랑 6%, 멜롯 5%, 말벡 2%의 비율로 비슷한 구조를 보입니다.

기후도 사람의 입맛도 조금씩 변합니다. 지금 존중받는 전통도 그 당시엔 파장을 일으키던 혁신이 하나둘씩 쌓여온 것은 아닐까요.

kwkim@fnnews.com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