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CT 성지로…'슬럼가의 기적'
파이낸셜뉴스
2019.06.19 18:11
수정 : 2019.06.19 19:34기사원문
세계 3대 창업클러스터 英 런던'테크시티'
도시재생 접목해 2010년 조성..핀테크·AI 업체 1만3000곳 입주
구글·아마존이 법률·제품화 지원..아이디어만 좋으면 누구나 창업
입주기업 이익 내도 대가 없이 지원… "영국 스타트업 90% 이상이 일자리 창출"
【 런던(영국)=안승현 기자】 영국 런던의 중심 '시티 오브 런던'의 북쪽. 핀즈베리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오래된 인쇄소들이 밀집해 있던 거리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버려진 공장들로 가득찬 슬럼가로 전락했다.
그러나 2010년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런던 동부지역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벤처 특별구역을 조성키로 하면서 대반전의 서막이 열렸다. 벤처기업들이 하나둘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현재 영국의 첨단기술을 좌지우지하는 스타트업들의 성지로 변모한 것이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5월 3일 영국 스타트업들의 산실인 테크시티를 찾았다. 유럽 디지털 기술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테크시티의 특별함을 둘러보고, 한국의 창업 환경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서다.
테크시티는 '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규모와 넓이가 방문단을 압도할 정도로 웅장했다. 건물 한두 개가 아닌 하나의 블록 전체가 모두 창업지원시설들로 가득찬 말 그대로 '시티'의 개념에 적합했다. 대부분의 창업보육기관들은 대기업, 금융사, 정부 지원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각 정보통신, 인공지능, 핀테크 등 특성에 맞는 스타트업들이 대거 입주하는 형태다. 특히 창업클러스터와 도시재생을 접목한 아이디어가 눈길을 끌었다. 테크시티 내의 시설들은 대부분 버려진 공장이나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풍스러운 외형은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는 첨단기업의 산실답게 말끔히 개조해 디지털 기술의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다. 현재 이 지역을 대표하는 창업시설은 바클레이,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주축을 이룬다.
■아이디어 하나가 1조 기업으로
테크시티에서 처음 방문한 창업 기관은 글로벌 금융기관 바클레이가 운영하는 '바클레이 라이즈'였다. 내부로 들어서자 마치 카페 같은 분위기로 꾸며진 공간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노트북을 켜놓고 작업을 하거나 서로 토론을 벌이는 등 디지털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역동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5층으로 나눠진 이곳은 층별로 각각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1층은 석달간 창업 희망자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주는 액셀러레이터 활동을 담당하고, 맨 위층은 어느 정도 성장해 단계가 높아진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에릭 밴 더 클레이 테크시티 대표는 "이곳에는 50개 프로그램이 있는데, 지난해 한국 기업도 이곳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다"며 "테크스타(창업 액셀러레이터) 대표가 한국에 가서 한국 기업들이 이곳의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도록 홍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층의 코워킹 플레이스는 신생 창업기업들이 자유롭게 회의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멘토·투자자가 함께 만나 토론하는 곳이며 기업들이 오피스를 설립할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며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들이 창업과 관련된 법률, 기술, 제품화, 뱅킹 등의 업무를 도와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고정된 좌석 없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신생기업들이 종합적인 지원을 받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창업자들에게 멘토 활동을 하고 있는 벤처파트너 크리스 아델스바흐는 "이 공간에서 자라난 창업기업이 10억달러의 투자가치를 올렸는데 큰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며 "주로 핀테크를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인데, 유럽에서도 아주 선구적인 기관으로 평가받는다"고 귀띔했다.
바클레이 라이즈에서 나와 10분 정도 걷자 세계적인 정보통신(ICT) 기업 구글의 스타트업 캠퍼스에 도착했다. 구글은 전 세계에 6개 스타트업 캠퍼스를 운영 중인데, 이곳이 최초로 설립된 곳이며 한국에도 세번째 캠퍼스를 운영 중이다.
■대기업 멘토링, 스타트업 육성 핵심
최신기술들이 연구되는 시설인 만큼 출입등록 시 사진·동영상 촬영이 금지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안내를 담당한 스테파노 로리니 구글캠퍼스 프로그램팀 매니저는 "구글도 20년 전 신생기업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성공전략을 다른 기업과 공유하기 위해 시작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입주기업들은 구글이 주력하고 있는 머신러닝에 특화된 기업들이었다. 입주기업들에 제공되는 서비스는 모두 무료이며, 이익을 창출하는 단계가 되더라도 대가를 받지 않는다는 게 운영자들의 설명이다. 로리니 매니저는 "런던의 창업생태계는 상당히 성숙한 수준인데, 우리는 시드기업이나 시리즈A 기업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며 "인종과 성별에 관계 없이 소수집단들이 창업할 수 있게 지원한다"고 말했다. 시드는 스타트업의 창업 초기단계를 말하며, 시리즈A는 이들이 데스밸리(초기 위험구간)를 통과할 수 있도록 정부와 런던시, 벤처캐피털이 함께 운영하는 2억~10억원 미만의 투자시장이다. 주로 시제품 단계부터 시장공략 직전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곳은 특히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다른 캠퍼스들과도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테크시티는 여러 기업들이 후원·운영하는 창업시설들이 각각의 특성에 맞게 개별 운영되지만 지역 전체의 총괄운영은 테크네이션에서 담당하고 있다.
■창업도시 런던, 전국으로 확산 중
테크네이션은 창업 액셀러레이터인 '아이디어 런던'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제라드 그렉 테크네이션 대표는 테크시티가 가진 의미에 대해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성장동력을 이끌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렉 대표는 현재 영국은 창업이 대세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이 전국적인 트렌드가 됐는데,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하고 이를 통해 미래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5년간 400개의 기업과 협력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90억달러의 기업가치 상승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내놨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그렉 대표는 한국의 창업환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테크시티에서 시작된 창업열풍은 이미 영국 전체로 퍼져가고 있으며, 이들은 다시 글로벌 시장을 향해 활발히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렉 대표는 "영국 내 스타트업만 20만개가량인데 이 중 90% 이상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며 "창업기업들이 이제는 유럽 시장을 넘어 한국, 일본, 미국 등 잠재력 있는 시장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ahnm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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