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명 군인 ‘헌정사진’ 찍은 사진작가

파이낸셜뉴스       2019.07.11 19:41   수정 : 2019.07.11 19:41기사원문
라미현 사진작가
7년간 전세계 군인 모습 촬영
기록 이어가며 노력·희생 기려
최근 한국전 참전용사 프로젝트

우리나라 곳곳은 물론 전 세계를 누비며 카메라에 군인들의 모습을 담는 사람이 있다. 사진작가 라미현(본명 현효제)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7년 동안 그의 렌즈에 담긴 군인은 6000여명, 여기에는 현역 국군 장병뿐만 아니라 국내외 6·25전쟁 참전용사까지 포함돼 있다.

현 작가가 군인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에 한 직업군인과 이야기를 나누고부터다. 그 군인은 현 작가에게 "28년 군 생활을 되돌아보면 국가에는 떳떳했지만 가족에게는 떳떳하지 못하다. 잦은 전출로 가족들과 거의 떨어져 지낸 탓에 가족사진을 다 모아도 앨범 하나를 못채운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이날의 대화는 현 작가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현 작가는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로 군인들의 헌신에 가치를 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Korean War Veteran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 현 작가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6·25전쟁 참전용사분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고 액자로 제작해 전달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현 작가는 지난 3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 있는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30여차례 찾아가 사진을 촬영하고, 후원을 받아 액자로 제작해 전달했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약 180만명인데, 작년 기준 생존자가 18만명뿐이고 이들은 대부분 90대의 고령"이라며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한 분이라도 더 기록으로 남기고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싶다"고 전했다.

9·19 남북군사합의로 남북공동유해발굴 준비가 한창인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GP에도 현 작가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지난 4월부터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유해발굴작업에 힘쓰고 있는 장병들을 현 작가의 렌즈로 담은 것이다. 그는 "저도 그동안 많은 군부대를 돌아다녔지만 GP는 처음이고 제 눈으로 그들을 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12일에도 현장에서 고생하는 6공병여단 장병들을 촬영하러 간다. 비록 남들보다 더 힘든 장소에서 더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누군가 기록해준다면 그들의 노력과 희생에 가치가 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좋은 마음에서 시작해 이어가고 있는 활동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시선 때문에 힘이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현 작가는 "대부분 활동을 자비로 진행하는데, 그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직도 해?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나''국가나 보훈처가 할 일인데 왜 개인이 하니''돈 없으면 안 가는 게 맞지' 같은 비아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면서 "물론 매달 카드값 결제일이 다가오면 힘들지만 그래도 그동안 모아뒀던 카메라나 조명, 렌즈들을 하나둘씩 정리해가면서 버티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하고, 돈이 안되면 가치가 없는 일로 생각하는 시선들이 현 작가를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 작가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그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인 내년에는 O1비자(아티스트 비자)를 미리 신청해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캠핑카를 구해서 한달에 2개 주씩, 2년 동안 미국 전역에 있는 48개 주를 다니면서 미국에 계신 6·25전쟁 참전용사분들을 만나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할 거예요."

현 작가는 "내년과 내후년에는 미국 참전용사 선생님들을, 2022년에는 나머지 20개 국가 참전용사 선생님들을 촬영하고 2023년 휴전 70주년에 맞춰 그간 찍은 사진을 전시할 것"이라며 향후 계획을 밝혔다.

ju0@fnnews.com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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