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해도 물개 박수…도전 원하는 벤투와 비상하는 나상호
뉴스1
2019.12.20 08:30
수정 : 2019.12.20 10:17기사원문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인 지난해 9월 초의 일이다.
그런 기준과 함께 부각된 인물이 바로 남태희다. 부임 초창기 벤투 감독은 수비력이 좋은 기성용-정우영 위에 공격형MF 남태희를 배치해 팀의 골격을 잡았다. 이전 감독들은 '남태희의 수비력이 다소 아쉽다'는 것에 우려를 표했으나 벤투는 '뛰어난 공격적 재능'에 방점을 찍었다. 부상으로 재활에 집중했던 기간을 빼고는, 벤투는 계속해서 남태희에게 큰 신뢰를 보내고 있다.
남태희와 비슷한 케이스로 비상하고 있는 인물이 나상호다. 나상호는 지난해 여름까지도 대중적 인지도가 크게 떨어졌던 선수다. 당시 그의 소속은 K리그2(2부리그) 광주FC였다. 반전의 단초는 김학범 감독이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김 감독은 와일드카드 손흥민, 황의조와 함께 나상호를 공격의 핵심 카드로 활용했다.
아무래도 '2부리거'가 중요한 무대에 선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은 소신 있게 발탁했다. 백업요원도 아니었다. 나상호는 황의조와 투톱, 혹은 손흥민-황의조와 스리톱으로 나서는 등 주축 전력이었고 당찬 움직임으로 금메달 획득에 일조했다.
김학범 감독에게만 특별한 재능으로 보인 것이 아니었다. 벤투 감독은 김 감독만큼, 외려 그 이상으로 나상호라는 젊은 피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황인범이 일찌감치 '벤투호의 황태자' 칭호를 받으면서 주목을 받아 상대적으로 조명이 덜 됐으나 나상호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그 때문에 황인범처럼 비난을 받았던 이도 나상호다. 나상호의 플레이가 좋지 않을 때마다 팬들은 '또 나상호냐'는 볼멘소리를 뱉었고 심지어 '벤투의 양아들'이라는 농담조 비아냥까지 들어야했다. 그러나 결국 선택은 옳았다.
대한민국의 대회 3연패로 끝난 동아시안컵에서는 수확물이 많았다. 팀으로서의 결실은 물론이고 개개인의 활약상도 빛났다.
MVP로 뽑힌 황인범은 '돌아온 황태자'라는 찬사를 받았고 최우수DF 김민재는 괴물다운 플레이로 '탈아시아급 수비수'라는 평가에 화답했다. 헌신적인 활동량으로 활발한 타깃 역할을 한 이정협, 정확한 중장거리패스를 뿌리던 주세종 등 경쟁력을 보여준 선수들이 적잖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나상호다. 대회 3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전, 날개공격수로 풀타임을 활약한 이상호는 왜 벤투 감독이 고집스럽게 발탁하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줬다.
개인전술의 힘으로 좁은 공간을 벗어날 수 있는 흔치 않은 테크니션인 나상호는 벤투가 선호하는 '기술자'의 능력을 십분 과시했다. 특히 일본전에서 보여준 순간순간의 판단력과 볼 컨트롤은 꽤 인상 깊었다. 동시에 그를 대하는 벤투도 인상적이었다.
일본전 후반 중반, 왼쪽 측면에서 나상호가 공을 잡았을 때가 있었다. 당시 일본 수비가 2~3명 달라붙었는데 나상호는 순간 화려한 개인기로 뚫어내려는 시도를 했다. 그 시도가 자신의 발에 맞고 터치아웃으로 끝나자 나상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지켜보던 벤투는 크게 박수를 치면서 엉덩이를 두들겨줬다. 그런 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 장면을 비롯해 벤투는 실수나 실패로 끝나도 시도하고 실행했을 때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수비수 김민재가 롱패스를 뿌렸을 때도, 왼쪽 풀백 김진수가 과감한 중거리슈팅을 때렸을 때도 그랬다. 비록 공이 다소 멀리 가고 골문을 벗어났더라도 벤투는 열심히 손뼉을 쳤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돌파해야 할 때 망설이다 공격의 템포를 죽이거나, 전방으로 패스를 뿌려야 할 때 차단이 두려워 옆으로 공을 돌릴라치면 특유의 열정적인 제스처(?)와 함께 벤치에 앉아 있는 코치들에게 불같이 화냈다. 굳이 해석하자면 "저기서 왜 주저하느냐!"라는 불만이었다.
수비수들에게도 도전하는 것을 원하는 스타일이다. 공격수들에게는 더더욱 과감한 플레이를 요구하고 있는 벤투 감독이다.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지도자의 독려 속에서 대표팀은 나상호라는 새로운 공격수를 얻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