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이냐 빚잔치냐… 시험대에 오른 ‘헬리콥터 머니’
파이낸셜뉴스
2020.03.18 17:26
수정 : 2020.03.18 22:02기사원문
美·유럽·日 ‘현금 살포’ 경쟁
트럼프, 국민에 현금 배포 추진
연준도 기업어음 매입 자금 공급
유로존 GDP 1% 경기부양에 사용
稅혜택·대출 등 유동성대책 추진
아베, 172조 규모 부양대책 준비
금융위기때처럼 개인에 현금 지급
미국과 일본 및 유럽 각국이 코로나19에 대응해 개인에게 현금 지급과 기업 세부담 완화 등 전방위적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극약처방식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반면 막대한 자금공급에 돈이 넘쳐흘러도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로 이어지지 않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거나 물가상승과 가계부채 급증 등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돈을 뿌리듯이 시장에 돈을 집어넣어 경기를 부양한다는 헬리콥터머니의 개념은 1969년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으로 제시했다. 현대에는 정부가 세제혜택을 주거나 중앙은행이 자산매입으로 시장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 같은 간접적 수단을 포함하는 용어이지만, 최초에는 정부가 국민 개인에게 현금을 나눠준다는 더 직접적 의미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연방준비제도를 이끌었던 벤 버냉키 전 의장은 기존 간접정책으로 부족하다며 헬리콥터머니를 강화하자고 주장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나 국민에게 실제 현금을 나눠주지는 못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 17일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경제활동이 마비되는 상황에서 자본흐름을 조정해 봤자 효과가 없다며 금리 중심의 경기부양책을 비난했다. 그는 특정 계층을 겨냥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헬리콥터머니로 불러도 된다"고 밝혔다.
급기야 미국과 일본이 이날 이런 극단책을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코로나19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서 "급여세 인하는 한 방법이지만, 수개월이 걸린다"며 "우리는 그보다 빨리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 상당히 빠르고 매우 정확하게 돈을 푸는 방법이 있다고 본다"면서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쥐여주는 방안을 내놨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같은 날 미국 헤지펀드 롱테일알파의 비니어 반살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포브스 기고문에서 사람들이 공짜 돈을 쓰기 시작한다면 엄청난 물가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민들이 받은 돈을 소비하지 않고 보유만 한다면 경기부양 목표가 무색해진다고 설명했다.
시장에 비정상적으로 과잉공급된 자금이 장기적으로 물가상승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유럽도 지갑 열어, 재정부담 위험
직접적 현금공급 외에 기업의 유동성 숨통을 터주는 재정정책도 단행됐다.
미국은 이날 헬리콥터머니 정책과 더불어 기존 양적완화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국채 등을 사들였던 연준은 이날 기업어음까지 매입,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연준 산하 뉴욕연방은행은 기존 1750억달러였던 하루짜리 환매조건부채권 거래한도를 5000억달러로 확대해 단기유동성 공급을 늘리겠다고 공지했다.
지난 16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들은 올해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1%에 달하는 예산을 경기부양에 사용하고 세제 혜택과 대출 확대 등 GDP 대비 10% 규모의 유동성대책을 마련한다고 합의했다.
다음 날 프랑스의 브뤼노 르 메르 재무장관은 올해 프랑스 GDP가 1% 위축될 수 있다며 450억유로(약 61조4407억원)의 자금을 동원해 기업과 노동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네덜란드는 100억~200억유로로 기업들의 법인세 감면 및 최대 90%의 임금지원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스페인 정부 또한 기업과 자영업자를 상대로 2000억유로 규모의 긴급지출안을 내놨고,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는 16일 발표에서 250억유로를 추가 지출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도 기업을 상대로 최대 5000억유로 규모의 대출 보증에 나섰다.
유로존 밖의 영국은 17일 GDP의 15%에 달하는 3300억파운드(약 496조원) 규모의 정부 보증 대출을 실시한다고 알렸다. 미국 CNN은 이날까지 유럽 각국이 내놓은 경기부양책 규모가 1조5000억달러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로존 회원국들이 제각각 다른 경기부양책을 남발할 경우 회원국 간의 경제적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교적 재정이 건전한 독일이나 네덜란드와 달리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바이러스 확산 전부터 재정상태가 좋지 못했다. WSJ는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비율이 GDP 대비 134.8%로 유럽연합(EU) 2위라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가부도 위험이 급등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도 172조원 이상 대책 예고
아베 신조 내각과 집권 자민당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소비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당 정액으로 현금을 나눠주기로 했다. 구체적인 액수는 조정 중이다.
아베 총리는 4월 초 현금지급안을 포함한 비상경제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18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내에선 현금 지급을 포함한 비상경제대책 규모를 최소 15조엔(약 172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개인에게 현금을 푸는 건 소비진작을 위한 '즉효성 마중물 전략'이다. 일단 소비로 이끈 다음 개인의 지갑을 더 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세율 감소, 세금 환원 정책에 비해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는 게 특징이다. 코로나19발 내수충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예상되는 금액은 1인당 1만2000엔(약 13만8000원)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만 18세 이하와 65세 이상은 2만엔(약 23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미 국민 개개인에게 현금을 나눠준 바 있다. 적어도 11년 전 지급했던 그 액수는 넘어서야 한다는 게 내각과 당의 생각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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