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복지와 웰빙 투자

      2020.03.23 16:59   수정 : 2020.03.23 16:59기사원문
한국형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가 점화됐다. 전 국민에게 매월 일정 금액을 지급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를 지급해야 소득의 '기본'이 충족될지 가늠하기 어렵고, 근로동기 훼손도 염려된다.

재원 마련도 녹록지 않아 기존 복지프로그램과 병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전체 가구의 절반 정도가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각종 사회적 수혜금과 현물을 받는다. 정부가 노령층의 기초연금과 아동수당뿐만 아니라 청년층 근로장려금 등으로 지급대상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복지부문에 대한 지출이 전체 예산의 35%를 웃돌 것으로 예상돼 정부의 의무지출 비율도 50%를 넘어 재정의 유연성이 약화됐다.

지표상 우리나라의 분배상황은 비교적 양호하다. 노년층 빈곤문제를 제외하면 분배 관련 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상대적 빈곤감은 돋보인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중위소득 50~150%에 속하는 가구 비율은 전체의 58.1%이지만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서 중산층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불과 34.6%였다. 분배 문제가 부각되고, 포퓰리즘이 발붙일 토양이 형성돼 있다.

경제성장과 복지 향상은 인류의 오랜 숙제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소득이 증대되고 빈곤은 감소한다. 21세기에 과학기술 발달과 글로벌화 심화로 경제적 부는 축적됐지만 빈곤을 타파하고 분배를 개선하려는 성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에 따라 포용성장론은 각국에서 주요 메뉴로 등장했다.

불평등 완화와 빈곤 해소는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장기 과제이며, 단기에 해결하려 들면 부작용만 커진다. 최근 최저임금 단기 급상승의 폐해가 좋은 사례다. 성과에 조급해 시장 메커니즘을 훼손하고, 성장을 위한 인센티브시스템을 약화시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북유럽은 거시적 재분배 정책과 경제 파이를 키우는 시장기능 활성화를 동시에 추진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공저한 미국 MIT대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가 모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어떤 국가도 재분배만으로 번영을 누린 사례가 없다"는 말이 되새겨진다.

포용정책의 승수효과 확대는 절실하다. 관련 정책은 매우 정교해야 한다. 복지향상을 '덧셈과 뺄셈'보다는, '곱셈과 나눔'에서 찾아야 한다. OECD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한 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개선하고, 재원 확보나 효과도 충분히 생각지 않고 명분만 앞세우는 정치적 형평론을 자제해야 한다. 유한한 재원으로 복지효과가 큰 부문을 잘 설정해 이를 지렛대로 삼아 자그마한 충격으로도 큰 성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아가 민간 부문의 나눔문화 성숙도 필요한 시점이다.

현금복지보다는 지방웰빙 여건을 혁신해 삶의 만족도를 높이자. 지방의 의료, 교육, 직업훈련과 문화인프라 등에 대규모로 투자하자. 이를 인터넷망과 대중교통시스템의 혁신과 연계해 '평안한 일상생활'을 어디서나 누리게 하자. 지방의 경제 활성화와 인구 증가, 대도시의 빈곤문제나 주택가격 완화에 유익하다.
특히 바이러스 사태 이후 급증할 청정지역이나 먹거리에 대한 수요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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