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가 세대간 갈등 일으킨다? 누가 그래!

뉴시스       2020.10.08 15:46   수정 : 2020.10.08 15:46기사원문
'하이루' 쓰던 천리안 세대, 요즘은 "라떼는 말이야~" 신조어, '요즘 세대' 특징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 한글날 하루 앞둔 청소년들 "시대적 흐름...세대갈등 아니다"

(출처=뉴시스/NEWSIS)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젊은 애들이 신조어를 남발해서 세대갈등을 만든다고요? 저희도 그런 말 잘 안 써요. 억울합니다!"

제574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칠보고등학교 앞. 등굣길에 만난 학생들은 '신조어가 만든 세대 갈등'이라는 말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SNS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주고받을 때 신조어를 자주 쓴다는 칠보고 2학년 윤태욱(17)군은 "엄마도 가끔 옛날에 유행했던 '캡' 같은 말을 쓰신다. 옛날에도 다 신조어는 있었고, 우리도 어른들과 대화할 때는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무조건 신조어 때문에 세대 갈등이 생긴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윤군은 어른들도 젊었을 때 신조어를 만들어 썼으면서 "왜 그런 말을 쓰느냐"고 지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신조어의 등장은 디지털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최근에 두드러지는 '요즘 세대'의 특징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 다만, 매체가 다변화하고 정보량도 많아진 만큼 다양한 언어가 나올 뿐이다.

실제로 1970~80년대에는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라는 뜻으로 못생긴 사람을 지칭), '특공대'(특별히 공부 못하는 대가리),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 '얼큰이'(얼굴이 큰 사람) 등의 줄임말이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왕따', '짱', '초딩', '중딩', '고딩' 등 요즘에도 통용되는 말뿐 아니라 '하이루', '방가방가' 등 '언어 파괴'라는 지적을 받은 말들도 유행했다.

하이텔·천리안을 쓰며 PC방과 채팅 붐을 일으켰던 세대가 이제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쓰는 기성세대가 돼 언어로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불평을 하는 상황이다.

한유민(17)양은 "학생들이 쓰는 말은 대부분 이미 뉴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정도의 말"이라며 "예능에서 '신조어퀴즈'로 나와서 알게 된 단어들을 일종의 놀이나 장난처럼 잠깐 쓰는 것이지, 일상에서는 안 쓴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우리도 모르는 새로운 단어를 찾아 쓰실 때도 있다. 그러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셨냐'라며 웃기도 하고, 서로 모르는 단어를 알려주면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경우도 많다"라고도 했다.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쓴다는 신조어는 불금(불타는 금요일), 아싸(아웃사이더), 집콕(집에 콕 박혀있다), 노잼(NO 재미·재미없다), 혼밥(혼자서 밥을 먹음) 등 이미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말들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등은 실생활에서 쓰이는 말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소통을 막는 '주범'으로 몰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말에 교사들도 공감했다.

칠보고 2학년 담임이자 국어과목을 맡은 남희정(37·여) 교사는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신조어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생들 스스로가 어른들과 대화할 때는 바른 언어를 쓰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다른 사람을 비하하거나 비속어가 섞인 말은 제재하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시대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인정하는 추세"라며 "언어는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세대를 분리해서 볼 게 아니라 어른들도 업무에서 편의성을 위해 줄임말을 쓰듯 학생들의 말도 존중해줘야 한다"라는 판단이기도 하다.

신조어 사용을 세대 차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언어는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신조어는 새로 쓰이는 말일뿐 어느 시대에나 있는 그냥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보다 훨씬 많은 정보에 노출돼 변화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순기능이나 역기능을 따져 물을게 아니라 그냥 어느 시대에나 있는 '새롭게 생겨나는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언어가 생기고 소멸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조사·연구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추세에 국립국어원은 2016년 10월부터 이용자 참여형 사전인 '우리말샘'에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못한 단어들을 수록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감수를 통해 시민들이 신뢰를 갖고 새로운 언어를 찾는 창구를 마련한 것이다.

'우리말샘'을 통해 언어를 관찰·기록하고, 이 말들이 모든 연령층에서 고르게 사용돼 정착하게 되면 '우리말샘'이 아닌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가게 된다.


오장희 칠보고 교장은 "물론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무조건 아이들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도 아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언어로 인한 세대 간 간극을 좁혀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iambh@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