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준 약 먹었는데…장애 딸은 깨어나지 않았다

      2020.12.11 06:30   수정 : 2020.12.11 15:58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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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스1) 박세진 기자 = 9일 오후 2시 부산지방법원 301호 법정.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한 부산고법 형사2부 재판장은 담담하게 A씨(40)에 대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딸(당시 9세)을 살해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에 선 엄마 A씨는 별다른 미동이 없이 선고를 들었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A씨의 곁에는 딸 B양이 늘 함께했다.

자폐성 발달장애를 앓아 사회적 연령이 2년5개월인 B양에게 A씨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모녀(母女)는 왜 이런 비극을 맞이했을까.

◇극심한 스트레스 속 동반자살 선택한 母

2019년 8월 12일 오전 A씨는 복용하던 우울증 약과 수면제 등 알약을 모아 B양에게 먹이고 자신의 입으로도 털어 넣었다.

딸과 함께 동반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이 무렵 A씨의 가정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B양의 예민함이 심해졌고 남편은 어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고 공황장애를 얻었다.
A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 약을 먹어야 했다.

경제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지칠 대로 지친 A씨는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범행을 저지른다. 이후 현장을 발견한 남편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다행히 깨어났지만 B양은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

지난 5월 28일 1심 재판부인 울산지법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박 부장판사는 이날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한 온정적 사회 분위기를 분명히 경계했다.

박 부장판사는 "유독 우리 사회에서 살해 후 자살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자주 되풀이되는 공통 원인으로 자녀의 생명권이 부모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그릇된 생각과 온정적 사회 분위기가 꼽힌다"며 "이러한 범죄는 미화될 수 없다는 점을 가장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유형의 범행은 동반자살이 아니다. 이 범죄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것이다. 살해 후 자살 또는 살해에 수반된 자살에 불과하다"며 "살해 후 자살은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전과 없는 점, 아동학대 정황이 없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양육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 아동 가족과 교사, 담당의사가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는 점, 중증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발달장애 아이와 부모에 대한 사회적 보호막의 부재

"A씨는 전문적으로 체계가 마련된 지역시설을 찾아보기 힘들어 지역의 병원보다 더 나은 전문병원을 찾아 다녀야 했다"며 "아이는 늘 얼굴이며 팔이며 신체 곳곳에 멍이 들어 오는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설명하지 못했지만 A씨는 최선을 다해 병원진료를 빠짐없이 해 왔다."

B양을 치료했던 담당의사가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의 일부다.

이에 대해 정유진 발달장애지원 전문가는 "어린 장애아이를 둔 부모들은 사회적 시선과 치료비용으로 인해 정신적, 물리적으로 힘든 것뿐만 아니라 가족 내 갈등으로 더 힘들어하기도 한다"며 "부모 스스로가 자녀에 대한 장애를 인정하기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담사들도 모두 장애아이를 키우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부모들의 마음을 백프로 공감을 해주고 정말 필요한 곳을 긁어주기는 어렵다"며 "비슷한 상황인 부모들끼리 하소연하듯 이야기하고 다독여 주는 게 힘이 되는 게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제일 잘 알 수 있는 게 주변에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들인데 당신들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도움을 주기가 어렵다"며 "부모들을 지원하는 기관이 물론 있지만 정말 극한의 상황에 몰려 있는 이들을 위해서 작정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에서 장애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을 나눠야 한다"고 조언했다.

1심 재판부도 A씨의 성장환경, 건강상태, 경제적 여건 등을 열거하거나 시와 소설문장까지 인용해 B양의 죽음과 A씨의 범행에 우리 사회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박 부장판사는 "가해 부모의 범행에 대한 온정주의 시각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의 원인을 부모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시각 모두 동의할 수 없다"며 "살해 후 자살 위험이 감지됐을 때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지역사회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범죄임을 선언하고 단죄하는 동시에 당신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우리가 맡아서 키우겠다고, 최소한 당신이 아이를 최선을 다해 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자신있게 공표하고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런 결과를 막지 못했고 재발된다는 점에서 국가와 사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재발될 우려가 있는 만큼 제도와 사회 안전망을 되돌아보고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신미약 상태 양형 과중" 항소...2심 法 "인정 어려워"

2심 선고공판에서 4분여에 걸쳐 양형 이유를 설명한 오현규 부장판사는 A씨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부산대 정신건강의학과에 피고인의 진료기록 감정을 맡겼으나 우울증에 관한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의 이야기에 불과했고 구체적으로 피고인이 사건 당시에 어떠했다는 분명한 답을 주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이후 A씨가 머문 병원들의 진료기록을 보더라도 우울증 환자가 보이는 통상적인 불안정도를 넘어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는 이야기는 없고 오히려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보였다고 적혀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사건 당시 심신 장애 상태에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아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양형에 대해서도 1심이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해서 형을 정한 것으로 보이고 항소심에서 형을 변경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항소기각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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