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의 눈물
파이낸셜뉴스
2021.01.14 18:00
수정 : 2021.01.14 18:00기사원문
동해를 접한 이곳 땅 218만㎡(66만평)에 원전이 들어선 것은 1977년. 그해 5월 기초 굴착공사를 시작, 6년 만인 1983년 상업운전(설비용량 67만7000㎾)에 성공했다. 국내 첫 가압중수로형 원전, 월성 1호기 얘기다. 이후 1999년까지 22년간 이곳에 원전 4기(월성 1~4호기)가 나란히 들어섰다. 5년 후에는 2~4호기가 차례로 수명을 다한다. 한때 국가 경제성장을 상징하던 월성은 지금 슬픈 땅이 됐다. 탈원전 갈등의 진원지로 우리 사회의 반목, 독선을 목격한다.
아는 얘기지만 다시 꺼내보자. 7000억원을 들여 수명(2022년 11월)을 연장한 월성 1호기는 2017년 폐쇄됐다. 2년여간 갈등 끝에 감사원이 지난해 11월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했다"며 1호기 조기폐쇄 절차에 하자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후폭풍은 컸다. 검찰 조사로 이어졌고, 관련 자료 수백건을 삭제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은 구속됐다. 감사원은 탈원전정책 절차 적법성에 대한 산업부 2차 감사도 시작했다.
정치권이 논란에 가세했다. 집권여당은 월성 원전 관리 부실을 전면 조사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크게 훼손된 탈원전 정당성을 만회하려는 속셈이 읽힌다. 야당은 과학적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여당의 움직임에 발끈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이렇게 반박했다. "팩트와 과학적 증거 기반의 논란이 아니다. 극소수 운동가가 주장한 무책임한 내용이 확산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맞는 말이다. 의혹이 있으면 투명하게 조사해 공개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과거에 비춰 들여다보면 우리는 지금껏 "팩트와 과학적 증거 기반"으로 탈원전 논쟁을 해왔나. 2018년 6월 한수원의 전격적인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당시 정 사장은 경제성을 근거로 폐쇄 결정은 합당하다고 했다. "과학적 증거"는 외면했고, 감사에서 밝혀진 대로 일부는 "팩트"도 아니었다. 누구를 편들 생각은 없다. 탈원전 싸움판에선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다. 이 지경의 대립구조로 원전정책을 왜곡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에너지대전환 과정에서 국민 이해·수용 절차를 무시한 결과다. '원전마피아'라는 오명을 쓴 전문가집단도 기여했다. 그들은 산업 특수성을 이유로 폐쇄적이다. 과거 수년간 납품비리·부실시공 등으로 17조원의 국가적 손실(2018년 국정감사)을 초래했다.
탈원전 정부가 말하는 경제성, 찬(贊)원전 전문가집단이 말하는 과학적 근거를 이제 누가 믿겠는가. 그럼에도 희망을 본다면 갈등과 논쟁의 순기능이다. 갈등 속에 진실이 확인되고, 사회는 성숙한다고 믿는다. 문재인정부 마지막까지 탈원전 논쟁을 멈추지 말자. skjung@fnnews.com 정상균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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