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떠난 검찰..'바람막이' 없는 검찰의 운명은
파이낸셜뉴스
2021.03.05 10:44
수정 : 2021.03.05 14:35기사원문
월성원전·울산시장 선거개입·김학의 출금 등
권력형 비리 의혹 수사 차질 빚을 듯
민주당은 '정치인 윤석열' 비판하며
재보궐선거 이후 검찰개혁 시즌2 추진할 듯
#. 2005년 10월 동국대학교 강정구 교수가 "한국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사를 시도한다. 그러나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검찰청법 8조에 근거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수사 지시를 내렸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에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수사지휘권에 항의하며 총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보수층을 중심으로 여론은 급격하게 냉각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전격 수용했다. 법으로 보장된 검찰총장의 임기 4개월을 앞두고, 윤 전 총장은 검찰 수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윤석열'이란 인물의 향후 정치적 행보가 더 주목을 받고 있지만, '검찰총장 사퇴'가 불러올 검찰에 대한 영향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권력형 비리 수사' 힘 잃을 수도
'검찰총장 윤석열'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였다. '권력형 비리 수사' 지속과 '검찰개혁' 비토(veto)였다.
이미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가 표류할 것이라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여권에 맞선 윤 전 총장이라는 바람막이가 사라지면 수사 동력도 떨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전지검이 맡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평가 조작 의혹 사건 수사가 대표적이다. 대전지검은 지난달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수사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여기에 울산시장 선거개입, 김학의 출국금지 수사 등도 남았다. 윤 전 총장의 부재는 수사 칼끝을 무디게 할 수 있다.
후임 검찰총장에 대한 하마평도 나오기 시작한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에 오를 후보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다. 이성윤 지검장은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로 이번 정부 들어 승승장구한 대표적인 친문 검사다. 다만 윤 전 총장 직무정지 및 징계과정에서 검사들의 신망을 잃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 차장검사는 지난해 윤 전 총장의 징계 사태 때도 두 차례 총장 직무를 대신 수행한 바 있다.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사정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가정보원 감찰실장 겸 적폐청산TF(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아 현 정부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윤 전 총장 임명 당시 후보군에 속한 봉욱 전 대검 차장검사와 이금로 전 수원고검장 등의 화합형 인물도 나온다.
그러나 정권에 가까운 검찰총장이건 화합형 검찰총장이건, 문재인 정부 임기말 권력형 비리 수사를 힘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사청 등 '검찰개혁'도 지속될 듯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 시즌2'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퇴 직전 수사청을 반대하며 윤 전 총장이 '센 발언'을 쏟아냈지만, '정치인 윤석열'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수사청에 대한 관심은 빗겨난 상황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4일 전체회의를 열고 검찰에 남은 6개 분야의 직접 수사권을 가져오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법안에 관해 논의했다.
당은 윤 전 총장의 사퇴와 상관없이 예정대로 검찰개혁 시즌2 발의·입법을 준비해나가겠다는 분위기다.
오기형 특위 대변인도 "논의가 충분히 정돈된 상태에서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담담하게 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윤 전 총장이 물러나면서 법안 발의 시점은 4·7 재·보궐선거 이후가 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애초 주장했던 2월, 혹은 3월 발의 계획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한편 민주당은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정치인 윤석열'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당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4월 선거를 앞두고 '불장난'을 하려고 이 시점에 나온 것 같다"고 비꼬았다.
노웅래 민주당 최고위원도 페이스북에 "직무정지도 거부하면서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 갑자기 임기만료를 고작 4개월여 앞두고 사퇴하겠다는 것은 철저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로 봐야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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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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