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간 수억 걷은 보이스피싱 수금책, 왜 무죄?
뉴스1
2021.06.19 07:30
수정 : 2021.06.19 17:28기사원문
'법원 경매 및 채권 관련 외근.'
지난해 5월 구직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찾던 40대 여성 A씨의 눈에 한 법무사 사무소 명의의 구인광고가 들어왔다. 인사 담당자라는 B실장에게 전화를 걸자 "채권 회수 업무를 담당할 것"이라며 흔쾌히 채용 의사를 밝혔다. B실장은 일당 10만원과 회수액의 1% 추가 수당, 교통비 별도 지급 등을 제안했다.
업무가 시작되자 B실장은 메신저로 실시간 지시를 내렸다.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얼마를 수금할지 등이었다. 그렇게 A씨는 같은달 8일 오후 춘천의 한 거리에서 현금 1420만원을 수금한 것을 시작으로, 14일까지 8차례에 걸쳐 1억9620만원을 건네받았다. 전달받은 돈은 여러 계좌로 분산 입금했다. 그렇게 A씨는 5일 만에 310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A씨는 곧 보이스피싱에 방조한 혐의로 붙잡혀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과 3540만원에 대한 배상명령을 받았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외국계기업을 포함해 2019년 12월까지 사회생활을 한 만큼, 비정상적 금융거래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었다는 이유였다. A씨가 법무사 사무소를 방문하거나, B실장의 신원이나 실제 근무 여부 등을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점 또한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돈을 수령한 뒤 다수의 제3자 명의 계좌로 분산해 입금하는 것"이라며 "단순업무의 대가로 단기 고액 수당을 받는 것이 이례적이라고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5월 2심은 A씨가 보이스피싱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앞서 자신의 신분증 등을 제출한 만큼 단순 채권회수 업무를 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메신저상 B실장의 지시가 보이스피싱을 암시하는 내용없이 단순하고 기계적, 반복적으로 이뤄진 점도 감안했다.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 중 1명을 만나러 갈 당시 왕복택시를 이용하며 택시기사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 점도 범행을 인지하지 못했을 정황으로 봤다.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범행을 방조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자신의 번호를 택시기사에게 선뜻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법무사 사무소에 직접 방문해보거나, B실장의 신원 등을 추가 확인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주의력의 정도와 수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취업과정에서 고용주 등을 상대로 신원정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확인하는 게 흔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미필적 고의를 추인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검사는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3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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