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주택이 사라진다" 대출·세금에 ‘주거→업무용’ 급증
파이낸셜뉴스
2021.08.16 18:29
수정 : 2021.08.16 18:29기사원문
상반기 서울 상업·업무용 거래 중
43%가 주거→상업 변경 후 거래
강남·서초 중심… "땅값 끌어올려"
#1.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아파트 한 채와 단독 주택 한 채를 보유한 A씨는 얼마 전 단독주택을 1종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했다. 세금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본인 명의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단독주택은 인근 시세 대비 80% 선에서 저렴하게 전세를 주고 있었는데 다주택자 보유세 중과로 한해 1500만원 하던 종합부동산세가 지난해 3000만원으로 올랐다.
A씨는 전세계약 만료 시점이 되자 주택을 상가 용도로 바꿔 1주택자가 됐다. 코로나19로 임대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현재 근생으로 용도변경한 건물은 비어있는 상태다.
#2.최근 20억원 대에 서울 강남구 개포동 다가구주택을 매매한 B씨는 매도인에게 세입자들을 내보낸 뒤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변경하고, 매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15억원이 넘는 건물의 경우 주택이 한 채라도 들어가 있으면 대출이 한 푼도 나오지 않는데 상가의 경우 많게는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매도인은 각각의 세입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용도 변경 절차도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야 제 값을 받고 건물을 팔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결국 애먼 세입자들만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다른 집을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16일 파이낸셜뉴스가 올 상반기 서울에서 거래된 상업·업무용 부동산 1만293건을 전수조사 한 결과, 4420건(42.9%)이 주거용에서 상업용으로 용도변경 후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10채 중 4채는 1~3종 일반주거용도 건물이 업무시설이나 근린생활시설 등 업무용도로 바뀌어 거래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서울 중에서도 강남구와 서초구에서 이처럼 용도변경이 이뤄진 경우는 877건으로 전체 '주거용→업무용' 용도 변경 거래의 20%를 차지했다. 이 일대만 놓고 보면 논현동이 126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사동 123건, 대치동 104건, 방배동 77건, 반포동 72건 순이었다.
서울 논현동 한 공인 중개사 관계자는 "요즘 단독주택 산다고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입자 명도와 업무용으로 용도변경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양재동 인근 한 공인 중개사도 "최근 거래된 단독주택 대부분이 용도 변경 매물이었다"면서 "그나마 서민들이 강남 한복판에서 주거할 수 있었던 주택들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주택시장 규제로 불필요한 용도 변경이 이뤄져 거래되다 보니 올 상반기 서울 업무시설과 근린생활시설의 거래 건수는 급증했다. 업무시설은 작년 동기 853건에서 올 상반기 1399건으로 64% 늘었다. 제2종근린생활시설은 2604건에서 3792건으로 46% 증가했고, 제1종근린생활시설은 1915건에서 2581건으로 35% 늘었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지속 확산되면서 공실률은 높아지고 임대료는 낮아지는 침체된 상권 분위기 속에서 상업·업무용 부동산으로 수요가 쏠린다는 점이다.
부동산 전문가인 안명숙 루센트블록 총괄이사는 "높은 세부담과 대출 규제로 서울 한복판 주택들이 상가용도로 전환돼 비어있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며 "이는 부동산 시장의 대표적인 비효율"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서울에서 거래된 상업·업무용 부동산 거래건수인 1만293건은 전년동기 7908건에 비해 30% 늘어난 규모다. 국토교통부가 관련 자료를 공개한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거래금액도 커졌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업무시설 거래총액은 7조5151억137만원으로 전년동기 3조5901억8465만원에 비해 2배 넘게 늘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