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 관한 5가지 허구

파이낸셜뉴스       2021.08.29 04:10   수정 : 2021.08.29 04:1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탈레반이 20년만에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와해되며 지하로 숨어들었던 탈레반이 20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그 저력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이하 현지시간) 탈레반의 재부상과 함께 신화들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면서 현실과 거리가 먼 5가지 탈레반의 진실에 대해 분석했다.

신화1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통제한다"

탈레반은 파키스탄 꼭두각시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파키스탄 제재'라는 해시태그를 단 포스트가 급증하기도 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탈레반 부상에 관해 오랫동안 파키스탄을 비난해왔고, 많은 서방 분석가들도 이같은 비판대열에 동참했다.

WP는 파키스탄 정보국인 ISI가 탈레반을 지원하고, 은신처를 제공했으며, 자금을 지원했다면서 이같은 도움이 없었다면 탈레반이 다시 부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둘 사이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WP는 지적했다.

파키스탄이 영향력을 높이려하고 있지만 탈레반은 파키스탄에 휘둘리려 하지 않고 있다.

양측간 갈등도 자주 목격된다.

2010년 파키스탄의 승인 속에 진행됐던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당시 대통령과 협상에서 탈레반이 합의를 거부하자 ISI가 탈레반 2인자였던 압둘 가니 바라다를 체포했다.

또 2015년에는 미국과 아프간의 요구로 파키스탄이 평화협상을 중재했지만 탈레반이 불참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최근들어 중국, 러시아, 인도네시아, 심지어 수니파인 탈레반과는 상극인 시아파 이슬람 국가 이란 등과도 접촉하며 파키스탄의 영향력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신화 2 "탈레반은 쉽게 분열한다"

이 신화를 퍼뜨린 주역은 미군이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의 지시가 이 신화에 근거한 것이었다.

미국은 당시 탈레반을 분열시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탈레반 분열에 나섰다.

이 신화는 그와 반대되는 증거들이 수없이 확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다.

2017년에는 당시 아프간 주재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사령관이던 존 니콜슨 장군이 탈레반을 강하게 압박하면 쪼개질 것이라면서 그 때 가서 각개격파한다는 전략을 짜기도 했다.

탈레반은 실제로 이질적이다. 각 지역 별로 파벌이 나뉘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필요할 때에는 서로 화합하고 규율이 잘 갖춰진 조직임을 입증하고 있다.

강도 높은 군사적 압박 속에서도 지휘계통을 확실하게 지켜냈고, 어떤 분열도 일어나지 않았다.

탈레반은 심지어 2013년 지도자인 모하마드 오마르가 사망해 권력승계 위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동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국가(IS)를 쫓아낸 적도 있다.

신화 3 "탈레반은 아프간 통치 계획을 갖고 있다"

탈레반이 예상과 달리 아프간 정부군을 전광석화처럼 몰아내고 아프간을 장악하자 이들이 치밀하게 정부 구성을 계획했을 것이란 분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앞서 3월에는 아프간 전문가인 마이클 셈플이 탈레반이 탈레반 운동이 주도하는 아프간 정부인 이슬람에미레이트를 구성하려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아프간 이슬람에미레이트를 개국하려 한다는 주장은 여러 신문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WP는 탈레반이 이 모든 군사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승리 이후 청사진은 아예 없다고 전했다.

탈레반의 성명으로 보면 그들 스스로도 아프간 정부가 이처럼 빠르게 전복될 것은 예상못했고, 현 상황에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신화 4 "탈레반이 결국 알카에다 부활시킬 것"

또 다른 신화는 탈레반이 9·11테러 주범인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알카에다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탈레반이 9·11테러 뒤에도 알카에다를 버리지 않았던 데서 비롯된 신화다.

탈레반이 다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알카에다 역시 다시 힘을 갖게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사이트(SITE) 정보그룹의 리타 카츠는 최근 뉴요커와 인터뷰에서 알카에다가 안전한 은신처로 아프간에 '재투자'할 것이란 게 '보편적 인식'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미 국무부 대테러 조정관 출신으로 애틀랜틱협회 선임 연구위원인 네이선 세일스는 뉴욕타임스(NYT)에 "알카에다가 아프간에 은신처를 다시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 등에 다시 테러를 계획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관계를 끊겠다고 밝힌 적도 없고, 알카에다를 폄하한 적도 없다. 탈레반 전사들 사이에서 알카에다는 실제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그러나 탈레반이 알카에다 부활을 지원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은 낮다.

탈레반은 미군의 철수를 정치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아프간이 서방에 대한 테러 공격의 기지가 되는 것을 막겠다고 약속했다.

탈레반 지도부는 알카에다가 급속히 쇠퇴하고 있어 이같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알카에다 규모는 이제 수백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해야 하는 상황에서 알카에다가 다시 세력을 규합해 통치에 혼란을 부르는 것을 탈레반 지도부가 달가워할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서방이 아프간에 침공하면서 탈레반이 20년전 권력을 빼앗겼던 터라 탈레반이 이번에도 전철을 되풀이할 가능성은 낮다.

신화 5 "탈레반은 아프간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않는다"

지난 수십년간에 걸친 민족·부족 갈등에서 파슈툰족으로 구성된 탈레반이 부상한 것이 결국은 '파슈툰 민족국가' 결성으로 가는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서방 전문가들은 탈레반 집권이 아프간의 다양성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WP는 이같은 분석은 1990년대였다면 맞는 것이 됐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탈레반이 이번에 아프간을 장악한데는 파슈툰족과 거리가 먼 민족과 부족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탈레반 지도부는 여전히 남부 파슈툰족 근거지 출신들이 주류이기는 하지만 중간 단계 사령관들과 전사들은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돼 있다.

2001년 이후 아프간 정부의 무관심과 엄청난 부패, 민족 내부 갈등이 겹쳐 타지크, 투르크멘, 우즈벡 민족 간 민족주의에 대한 환멸과 특권박탈 움직임이 거셌던 것이 바탕이다.


덕분에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세력이 서부와 북부 아프간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최근 카불 공략도 가능케 만들었다.

WP는 탈레반이 최근 수년에 걸쳐 스스로를 민족적으로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내보이려 노력하고 있다면서 여러 민족 출신을 지역 관리로 임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저한 수니파인 탈레반은 아울러 수니파와 앙숙인 시아파 교도들도 평화롭게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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