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눈물의 바다
파이낸셜뉴스
2021.09.08 15:00
수정 : 2021.09.08 14:59기사원문
해양경찰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찔한 경험을 한다. 험난한 바다 환경에서 겪게 되는 기적같은 구조 상황. 그런 경험은 수많은 생명을 구조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하고 혹은 구조에 실패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격랑을 헤치고 다다른 현장이 오인신고이거나 자체 해결이 가능한 위급 상황이 아닐 때, 깊은 안도와 허탈이 교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상황이 해양경찰에서 회자되는 것은 경각에 달린 국민의 위험 앞에 목숨 걸고 현장으로 향한 공통의 기억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후에도 경비함정의 함장을 거치며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 날의 일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기억이 뚜렷하다. 해양경찰 본청 종합상황실장과 경비과장을 거쳐 경비국장으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전국 바다에서 해양사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이 날의 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모든 사고 현장이 제주도의 그날 밤처럼 느껴져서 아찔하면서도 모두의 안전을 간절히 응원해야 했다.바다에서 사건사고는 주로 악천후에 발생한다. 해양사고 현장까지 최단거리로 가려면 거친 바람과 파도가 경비함정을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안전항로를 택하면 조난을 당한 국민의 안전이 위태로워진다. 위험에 처한 국민을 생각하면 마음 속 잠깐의 갈등이 곧 길을 찾는다. 국민의 안전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현장 직원의 위험이 포함돼 있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으로서 때로는 직원을 사지로 몰아넣는 결정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을 강요해야하는 순간이 있다. 상황발생 소식을 접한 후 구조대원 투입을 결정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위험 속에서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고군분투하고 있을 우리 동료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과 간절함이 가중되는 고통의 시간이 지속된다. 그래서 구조 결과는 성공적일지라도 그 결과를 위해 현장 대원들이 감내해야할 불안과 노고를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는 미안함이 늘 아쉽다.
오늘도 생명의 위험이 도사리는 현장에서 묵묵히 수고를 감수하고 있을 각지의 해양경찰과, 그들의 임무완수와 안전한 귀가를 고대하면서 마음 졸이고 있을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전국의 바다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바다의 전설이 되어버린 고 박경조, 이병훈, 권범석, 양춘석, 최명호, 이청호, 최승호, 백동흠, 박근수, 장용훈, 오진석, 김형욱, 박권병, 박영근, 정호종 등 해양경찰의 영웅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서승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치안감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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