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맞을 만했네’라고 했어요

파이낸셜뉴스       2021.09.23 16:14   수정 : 2021.09.23 16:17기사원문
설문, 청소년 성소수자 65% “가정폭력 경험”
부모폭력 피해 온 쉼터...“부모 동의 요구”
성별 구분 쉼터, 성소수자 또 다른 ‘장벽’

[파이낸셜뉴스] #1.경찰은 저와 부모님을 조사하면서 제게 ‘맞을 만했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성소수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맞는 게 당연한 일인 건가요? 가정도 안전하지 않아, 살려고 나온 밖도 혐오로 뒤덮인 세계였습니다

#2.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가출을 시도했어요. 성소수자 친구의 추천을 받아 쉼터로 갔지만 부모의 동의가 필요해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됐죠. 반년 동안 참고 버틴 끝에 16살에 두 번째 가출을 감행했고, 무작정 서울로 왔어요.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하면서 찜질방 샤워기 물을 받아 마시며 버텼어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을 찾아온 탈가정 성소수자들의 상담 내용이다. 띵동은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다.

지난 2015년 처음 활동을 시작했고 지난해만 총 487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띵동 조사 결과 탈가정 경험 또는 시도를 고민해본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가정 내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해 안정된 환경을 찾아 쉼터를 찾지만 결국 부모의 동의가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는 등 또 다른 2차 위험에 노출되고 있어 보호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다양한 학대와 가정폭력 경험한 것으로 조사

23일 띵동이 발표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탈가정 고민과 경험 기초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탈가정 경험이 있거나 탈가정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청소년 성소수자 가운데 65%는 다양한 학대를 받았다. 신체적·정서적 폭력, 전환치료 시도, 부모의 방임·무관심, 성폭력 중 최소 1개 이상의 가정 내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년법 제 4조에 따르면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는 것은 우범 사유로 경찰이 위기청소년을 보호자에게 인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 민법 제914조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거소지정권’이 부모에게 있다. 띵동 활동가는 “명백히 탈가정 원인이 아동학대라고 경찰이 판단하지 않는 이상 가정불화로는 쉼터에 입소할 수 없다”며 “결국 가정폭력이 반복되는 가정으로 복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과 불화로 쉼터에서 지내는 중인 A는 “쉼터는 부모 허락이 있어야 머무를 수 있다”며 “살기 위해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이 같은 이유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털어놨다. 띵동 설문조사에 응답자 중 75%는 ‘부모에게 연락할 것 같아서’를 이유로 쉼터 대신 찜질방 등 다른 공간을 택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라서.." 쉼터 입소 거부 빈번

부모 동의를 얻어 쉼터에 입소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쉼터 내 성별 구분이 남성, 여성으로 제한적이라 또 다시 성정체성을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마련한 ‘2021년 청소년 사업 안내’에 따르면 청소년 쉼터의 경우 반드시 남성과 여성의 쉼터로 분리해 운영하도록 한다.


민지희 띵동 상담지원팀 활동가는 “올해 기준 전국 청소년 쉼터 147개 중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힌다”며 “남성·여성용으로 구분된 쉼터에서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성별정체성) 등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다시금 성별을 강요받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집을 나온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성소수자임을 밝히면 다른 청소년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부당하는 사례도 있다”며 “번번히 논의 후 연락을 주겠다고 한 뒤 회신을 주지 않는 경우가 빈번해 쉼터를 찾는 데 애를 먹는다”고 덧붙였다.

민 활동가는 “정부차원에서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를 심도있게 바라보고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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