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살자" 외신, 전두환 사망 보도…日매체 "첫 방일 韓정상"(종합)

뉴스1       2021.11.23 15:38   수정 : 2021.11.23 15:43기사원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지병을 앓아온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4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전 전 대통령은 자택 내에서 쓰러져 오전 8시55분께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으며 경찰은 오전 9시12분께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2019년 3월11일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고인으로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2021.11.23/뉴스1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1년 광주-대구간88올림픽고속도로 기공식에서 참가해 연설하는 모습.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정윤영 기자 =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놓고 주요 외신들은 그의 행적과 관련해 다양한 평가를 내놨다.

프랑스 AFP통신은 전씨에 대해 "대규모 시위가 그를 몰아낼 때까지 정적들을 잔인하게 짓밟았다"며 그가 "광주의 학살자(butcher)"라는 오명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AFP통신은 전씨가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한 최초의 대통령임에도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욕먹는(the most reviled) 인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전씨가) 한국의 성장과 번영을 이끌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했으나 역사의 판결은 냉엄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냉전 막바지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동맹국의 불안정을 두려워하던 미국은 전씨를 비호했고, 전씨는 이를 즐겼다"며 "이는 한국 진보세력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불신을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전씨가 청와대에 있던 8년은 잔혹함과 정치적 억압으로 특징지어지지만, 경제적 번영 또한 있었다고 전했다.

2003년 2205억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 전씨가 본인이 가진 거라곤 29만1000원과 개 두 마리, 가전제품 몇 개뿐이라고 말해 전국민적 공분을 산 것도 언급했다.

전씨의 가족들은 2013년 채무를 갚겠다고 공언했지만 그가 미납한 추징금은 2020년 12월 기준으로 총 1000억원에 달한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씨가 자신의 만행에 대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이 매체는 NYT는 전씨가 퇴임 8년만인 1996년 군사반란과 내란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또한 수억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군 장성 출신 3명의 전직 대통령 가운데 가장 늦게 사망했다고도 덧붙였다.

베트남 매체 VN익스프레스는 전씨가 한국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정치인 중 하나라며 전씨가 자신의 군사 쿠데타가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고 합리화했던 것을 언급했다.

브라질 매체 G1은 전씨가 시위대 학살을 지시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막은 권위주의 대통령으로 여겨졌지만, 한국의 경제·기술 성장 시기에 나라를 이끌었다고 전했다.

◇日매체 "첫 방일 韓대통령" "한일 신시대 주창"

일본 공영 NHK방송은 전씨가 1980년 쿠데타로 실권을 잡고 경제개발을 배경으로 한 강권적인 개발 독재형 정치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생전 일본과 맺은 인연에도 주목했다. NHK는 외교적으로는 전씨가 1984년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일본을 공식 방문해 히로히토 일왕과 회견했다고 소개했다.

산케이신문 또한 '한국 국가원수로서 처음 일본에 방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그가 일본에 공식 방문한 사실을 언급했다.

아사히신문은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해 군사정권을 이끈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전씨의 행적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매체는 전씨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 쿠데타에 동조했고, 1979년 10월 박 전 대통령의 사망 후 12월 각 부처를 제압하는 쿠데타를 주도해 실권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1980년 5월에는 전국에 비상 계엄령을 내리고 광주에 군을 투입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과 학생들을 제압한 사건을 지휘했다고도 전했다. 한편으로 전씨가 경제성장에 힘써 1984년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 와서 '한일 신시대'를 주창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TV아사히는 또한 전씨가 군인 출신 대통령으로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탄압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전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당시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했던 점도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씨가 무력으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해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다며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적어도 백 수십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전씨가 민주화 운동을 격렬하게 탄압하는 한편 재벌이 주도하는 형태로 한국 경제를 안정 성장의 궤도에 올려놓고,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유치해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크게 높일 기회를 제공한 점도 언급했다.

◇中매체 "전두환 도박 덕에 韓경제 도약…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도박꾼"

중국 매체들도 일제히 전씨의 사망 사실을 전했다. 봉황망은 전씨의 일생과 업적을 아우르는 14편의 특집 기사를 대서특필하며 "전두환은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닌 도박꾼(赌棍)이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전두환은 박정희에 이어 또 다른 군부 독재자였다 사실을 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전두환은 도박 중독이 심했다. 그는 도박으로 집권한 이후 국가를 통치하는데 있어서도 도박 기질을 보였다"고 전했다.

봉황망은 "흥미로운 것은 그가 막무가내로 결정했던 쿠데타가 아무런 저항 없이 성공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미국은 전두환의 막가파식 행보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매체는 "전두환은 1980년대 경제전환기를 맞아 삼성 등 몇몇 재벌의 신흥 전자산업에 올인해 힘을 실어줬다. 다행히 전두환의 이 같은 도박 덕분에 한국 경제는 한 단계 도약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두환의 집권 하 한국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불행하게도 가장 기본적인 복지제도조차 갖질 못했다. 의료보험도, 사회보험도 없고, 산재보험도 없었다"고 적었다.


이날 중국신문망은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적 인물 중 한 사람인 전두환은 종횡무진하며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의 일생의 공과는 후대에 남겨진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인터넷판 환구망은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이날 전씨가 자택에서 향년 90세로 숨졌다고 간략하게 보도했다.

매체는 전씨가 지난 1996년 내란 혐의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1998년 사면받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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