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백척간두'에 선 삼성전자·SK

뉴스1       2022.01.03 05:31   수정 : 2022.01.03 08:33기사원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 뉴스1


미국과 중국 간 군사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지난해 11월 29일 대만해협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코버트 쇼어스 갈무리) © 뉴스1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를 방문,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ASML은 반도체 노광장비 전문 업체로 극자외선(EUV) 장비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이 부회장은 피터 버닝크 CEO 등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전자 제공) 2020.10.14/뉴스1


SK실트론 연구원들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삼성전자의 LPDDR5X D램 © 뉴스1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한국시간으로 2021년 11월 16일 오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첫 화상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로 정면충돌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의 현 상태와 평화, 안정을 저해하는 일방적 행위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하자, 시진핑은 "대만이 미국에 의존해 독립을 꾀하거나, 미국이 대만으로 중국을 제어하려는 시도는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맞받아쳤다. 시 주석은 "불장난하는 자는 타죽는다"라는 자극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만 문제에서 첨예하게 대립한 양국 정상은 첫 화상 정상회담에서 공동 성명도 내지 못했다. CNN은 '회담에서 큰 성과는 없었고, 양국이 대면할 가능성과 요소들은 더욱 많아졌다'고 평가했고,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양국 관계는 수십 년 만에 최저점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은 미·중 간 글로벌 패권 다툼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두 정상 간 설전이 오간 이면에는 '안보'와 '경제'라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 있다. 중국 본토와 직선거리로 불과 125㎞ 거리에 있는 대만은 미국에는 중국과의 패권 다툼 최전선에 있는 '불침항모'와도 같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외교정책 분석가이자 국무장관을 역임한 존 덜레스는 당시 소련을 포함한 대륙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 대만을 중심으로 한 '아일랜드 체인 전략'을 세웠다. 이는 중국에서 '도련선'이라는 이름의 해상 방어망의 개념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도련선은 중국 입장에서는 방어선이지만, 미국이나 주변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팽창 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은 일본 오키나와-대만-필리핀-남중국해 말레이시아를 잇는 ‘제1도련선’에서 배타적 제해권을 확보한 뒤, 일본-사이판-괌-인도네시아로 연결되는 ‘제2도련선까지 추후 진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중국이 세력 확장을 현실화하려면 오키나와와 한국에 군사 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도련선 전략은 동아시아, 더 나아가 태평양 제해권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 TSMC에 의지해 온 미국, 반도체 생산 변화 모색

특히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대만 기업이라는 점에서 대만해협에서의 양국 간 긴장감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 설계 기술과 관련한 특허가 세계 최고 수준에 원천 기술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 능력은 대만이나 한국보다 한참 떨어진다.

반도체 산업은 용도에 따라 크게 정보를 저장하는 목적의 ‘메모리 반도체’와 정보를 처리하는 목적의 ‘시스템 반도체’로 구분된다. 디램과 낸드플래시가 대표적인 메모리의 경우 대개 한 기업이 설계부터 생산까지 도맡아 하는 데 반해,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AP 등의 시스템 반도체는 ‘설계-파운드리-패키징’ 등 공정별로 글로벌 기업 간에 분업화돼 있다.

인텔, 퀄컴, AMD, 엔비디아 등의 기업을 보유한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설계는 세계 최강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을 도맡는 파운드리는 대만과 한국에 주도권을 내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기준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3.1%로 독보적이고, 삼성전자가 17.1%로 뒤를 쫓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은 집적도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미세공정 기술이 핵심 경쟁력으로, 현재 7나노미터(1nm = 1m/10억) 미세공정 기술을 적용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두 기업은 반도체 칩 생산 능력에서 나란히 3나노미터 제조기술 개발 상용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반해 인텔, AMD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은 2010년대 들어 미세공정에서 TSMC와 삼성전자에 뒤처지기 시작한 데다, 높은 인건비 등으로 경쟁력을 잃으면서 생산을 사실상 포기했다. 특히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TSMC에 생산을 크게 의지하고 있는데, 만약 대만이 중국 영향 아래 놓이게 되면 미국은 반도체 공급에 매우 큰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올해 초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조사에 나서고 TSMC, 삼성전자 등에 미국 내 생산 시설을 늘려 달라고 요청한 데에는 이처럼 부족한 생산 능력을 먼저 확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아울러 ‘반도체 굴기’로 일컬어지는 중국의 거센 도전을 받아온 미국은 중국의 세력 확장에 대비해 인공지능(AI), 5G, 미래 자동차 등 미래 첨단산업의 핵심 인프라와도 같은 반도체의 공급망 체계를 자국 내에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 중국 '반도체 굴기'에 반격 나선 미국

2015년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가까운 미래에 미국 첨단산업의 핵심 경쟁력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해 준 한해로 회자된다. 그해 중국 국영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은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인수에 나선다. 아울러 중국 국무원은 산업 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를 통해 글로벌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비록 미국 반독점 당국의 제동으로 칭화유니그룹의 마이크론 인수는 무산됐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은 이후에도 샌디스크, 페어차일드, 래티스 등을 인수하려 했다. 2017년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려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도 중국의 미국 반도체 기업 사냥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로 볼 수 있다.

브로드컴이 비록 미국에서 창업한 기업이지만, 인수합병 등으로 본사가 싱가포르로 변경됐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었다. 당시 미 재무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면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 연구개발을 저해하고 중국 화웨이의 시장지배를 허용할 가능성을 특히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공세에 방어 자세를 취하던 미국이 본격적으로 반격을 가한 것은 2019년 화웨이를 겨냥한 제재에 나서면서부터다. 미국은 중국 공산당과 긴밀한 관계인 화웨이가 미래 사회 핵심 인프라인 5G망을 장악할 경우 되돌릴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며 퀄컴, 인텔 등 자국 반도체 기업이 화웨이에 제품 공급을 어렵게 하는 제재를 시작했다.

화웨이는 이에 맞서 자화사인 하이실리콤을 통해 설계한 반도체 칩을 TSMC에 위탁 생산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자 미국은 이듬해인 2020년 5월에는 제3국 기업이라도 미국의 기술을 부문적으로라도 활용한 반도체 기업은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화웨이에 제품을 팔 수 있도록 하는 더 강력한 제재 카드를 꺼내 든다.

여기에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 따른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인해 미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더욱 서두르게 된다. 이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2021년 2월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잘 드러난다.

SIA는 서신에서 “헬스케어, 통신, 클린에너지, 컴퓨팅, 수송을 비롯한 무수한 영역에 걸쳐 기간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것이 반도체다. 반도체가 실현하는 기술로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생산성과 네트워크를 유지해 왔다”며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에 대한 지원과 연구에 과감한 투자를 진행함으로써 대통령과 연방의회는 미국 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재활성화할 수 있고, 국가 안전 및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본격적인 '반도체 전쟁'은 2022년부터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중 간 반도체 패권 다툼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고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의 거센 반격으로 비록 중국이 다소 주춤하고는 있지만,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2년은 마오쩌둥 이후 처음으로 장기집권 시대를 열어가려는 시 주석의 집권 10년 차로, 그는 나름의 반격을 위해 절치부심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핵심 부품과 소재의 내재화를 추진하고, 미국처럼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 하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도체는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 어려운 산업 분야인데다, 미국이 반도체 첨단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네덜란드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중국 기업에 수출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등 강력한 제재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연구개발을 적극 장려하고, 세금 감면 혜택 등을 늘려 자국 반도체 기업이 장기적으로 대비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을 우선 취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국은 2021년 2월 미세공정 기술력과 경영 기간 등에서 부합하는 반도체 기업에는 법인세 면제까지 가능하게 하는 육성안을 내놓기도 했다.

거세게 미국을 추격해 오던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는 향후 몇 년간 미국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자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 회복이 시급하다고 보고, 2020년 6월부터 2024년까지 설치된 반도체 장비 또는 반도체 제조 설비 투자금에 대해 최대 40%를 환급해주는 내용의 지원 법안을 마련했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을 재개하고, 총 200억 달러(약 23조8000억 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2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며, 이 같은 바이든 행정부의 자국 반도체 제조업 육성 정책에 재빠르게 올라탔다. TSMC는 2024년까지 1000억 달러(약 113조 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미국 정부의 세제 혜택에 따른 결정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자, 미국에 제2파운드리를 건설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2021년 8월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이후 향후 3년간 240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 한국, 미·중 사이 줄타기…"기술 경쟁력 확보가 살길"

미국과 중국 간 갈등 고조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은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으로 비유된다. 한국은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반도체 원천 기술이 필요하지만, 반도체 수출에서 대중국 비중이 40%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에 당분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 와중에 발생할지도 모를 한국 기업들에 대한 부당한 요구나 불이익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도 요구된다. 한 예로 미 상무부가 설문조사 형식을 빌려, 자국 반도체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등 해외 기업에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고객사 정보 등 민감한 정보 제출을 요구한 것과 관련, 각 기업이 제출한 자료는 향후 자국 기업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활용될 가능성도 있고, 주기적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장관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국방물자생산법(DPA)을 거론하며 자료가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추가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압박 수위를 높인 바 있다. 이는 경쟁사에 영업비밀을 노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기업들의 우려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중국에는 거래나 투자가 축소될 경우 미국의 제재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미국의 자국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영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의 저서 <반도체 투자 전쟁>에서 “파운드리는 TSMC와 삼성전자의 양강 구도에서, 미국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인텔이 성공적으로 회복한다면 3강 구도로 바뀔 수 있다”며 “만약 삼성전자가 TSMC와 인텔 대비 미국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미국이 국가 안보와 연계해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면 상대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에 파운드리 증설을 공격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서 그는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고, IPO를 통해 얻은 재원을 활용해 새로운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할 SiC(실리콘 카바이드)와 같은 화합물 반도체 부문 진출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전무는 “미국이 반도체에서는 중국보다 절대적인 기술 우위에 있는 만큼 현재는 패권 전쟁이라기보다는 제조시설 구축 경쟁이라고 본다”며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투자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한국 정부도 공급망 안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성철 사단법인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 선임연구위원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 있는 생산 시설과 우수한 인력을 확보해 우리의 기술력을 높이는 것으로, 특히 연구개발을 위한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는 용도에 따라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로 나뉜다. 데이터를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휘발성 메모리인 디램(DRAM)과 비휘발성 메모리인 낸드플래시(NAND Flash)로 구분된다.

디램의 경우 한국의 삼성전자가 약 40%, SK하이닉스는 약 30%를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 기업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정보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설계부터 생산, 패키징까지, 글로벌 기업 간 분업화가 돼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용도에 따라 크게 CPU(Central Processing Unit),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처리장치), AP(Application Processor),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 등으로 나뉜다.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의 설계에서는 독보적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생산은 대만과 한국 기업에 맡기고 있다.

특히 인텔 등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TSMC에 주로 생산을 위탁해 왔다. 하지만 중국의 팽창으로 TSMC가 중국의 영향권에 놓일 것을 우려하며 자국 내 생산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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