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돼도 새판" 조직개편 폭풍전야… 현안 뭉개며 복지부동

파이낸셜뉴스       2022.02.20 18:40   수정 : 2022.02.20 18:40기사원문
기재부 분리·여가부 폐지 등 여론
"언제 이삿짐 싸야 할지 몰라" 술렁
중장기 전략 손 떼 사실상 개점휴업
"선거중립 위반 될라" 공약에 입조심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정권 말 관가의 복지부동이 이번에도 재연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가 교체되면 어차피 새판을 짜야 하는데 의미 없는 일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다. 과거에도 선거를 앞두고 몸을 사렸지만 이번에는 궤를 달리한다.

유력 대선후보 간 팽팽한 지지율에다 일찌감치 정부조직개편 필요성 여론까지 힘을 받으면서 정부세종청사는 시급한 일처리 외에 중장기 전략은 아예 손을 대지 않고 있다.

■공약 있고, 검증 없다…잠잠한 세종관가

행정수도인 세종특별자치시는 중앙부처 공무원들 세상이다. 정부서울청사에 터를 잡고 있는 외교, 국방, 금융 등 일부 부처를 제외하곤 대부분 정부세종청사와 그 인근에서 업무를 본다. 각 부처 공무원들이 밀집해 평소에도 북적거린다. 대선이 임박한 관가는 보통 당선 가능 후보들의 정책검증과 청사진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최근 세종청사는 쌀값 보장 등을 요구하는 농민단체들이 벼 이삭 포대를 쌓아놓고 벌이는 시위 등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평온하다. 유력 후보들의 지지율이 팽팽한 데다 과거 대선과 같은 선거전이 펼쳐지지 않아서다.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20일 "과거 대선, 총선보다 오히려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대선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책공약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대형 공약이 없다. 17대 대선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운하, 18대 대선 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 민주화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시급 1만원을 공약했다.

이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한가한 것은) 대형 공약 없이 '소확행' '심쿵' 등 생활밀착형 공약들이 주류를 차지하는 이유도 있지만 공무원 선거중립 위반 우려로 일절 언급도 못해 재원조달방안 등에 대해 세세하게 살펴보지도 않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12년 12대 총선 당시 여야는 복지 확대 공약 이행에 100조여원이 든다고 했지만, 당시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추산해보니 3~5배는 더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자 "공무원의 선거중립 위반"이라는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1인당 기본소득 연 100만원, 주택 311만호 공급, 만 18세까지 아동수당 지급 등의 공약을 내놨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경우 병사 월급 200만원, 부모수당 1200만원 등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5년간 '300조원 이상', 윤 후보는 '266조여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세부적인 검증은 없었다. 공무원들은 '알면서' 입을 닫고 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안정화 문제는 국민들이 꼭 알고 짚어야 하는 문제인데 생활밀착형 공약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안되는 게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정권 향배는'…계산기만 두드린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공무원들의 점심시간은 왁자지껄하지는 않지만 정부조직개편 문제가 늘 화두에 오른다고 한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돼도 개편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경제부처에 근무하는 고위관계자는 "조직개편으로 이삿짐을 싸야 할지 몰라 정책에 눈이 가지 않는다고 하는 젊은 직원들도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지난 한 해 60조원을 넘긴 국세 세수오차를 내 여론의 비판을 받은 데다 예산편성권까지 갖고 있어 초법적 부처라는 지적을 받은 기재부는 부처 분리 가능성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기재부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경제정책을 총괄하면서도 예산편성권 등 재정정책을 쥐고 있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것이어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을 확대하고 소상공인 등 피해계층 지원을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라 곳간지기로서 재정건전성 원칙도 무너뜨릴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당국과 재정당국이 한몸일 때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타 부처에 비해 역할이 두드러지면서 기재부 분리 여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분할·폐지 기로에 서있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여성가족부의 공무원들도 향후 자신들의 미래를 점치며 술렁거리고 있다.

최근 에너지 차관을 신설하며 공룡부처로 거듭난 산업부는 이 후보가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겠다고 공언해 좌불안석이다. 산업부에서 에너지 부문을 떼어내 환경부와 합치는 안이 떠돌고 있다. 산업부는 에너지 부문에 막강한 규제 권한을 갖고 있어 조직이 분리되면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가부는 윤 후보의 폐지 공약에 긴장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청소년 정책 쪽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의 대통령 집무공간을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겠다는 공약도 악재다. 이 공약이 현실이 된다면 현재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여가부는 세종시로 내려와야 한다.
수도권 거주를 희망하는 젊은 공무원들의 타 부처 이직, 퇴직까지도 우려된다.

하지만 주요 부처가 대체로 잠잠하지만 장관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한 공무원은 "원래 이맘때쯤이면 여유롭거나 다음 인수위원회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관이 끝까지 일을 놓지 않아 실무자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오은선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