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이 본 '돼지의왕'…"김동욱 사려깊은 연기 감탄"
뉴시스
2022.03.29 14:36
수정 : 2022.03.29 14:36기사원문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연상호 감독은 창작자로서 '고정관념을 갖지 말자'는 주의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시작해 드라마·영화·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까지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다.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도 하지만, 자신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드라마화하는 데는 탁재영 작가 힘을 빌렸다.
애초 드라마로 만들기에 내용이 부족했는데, 스릴러를 가미해 재미를 극대화했다.
"김동욱의 사려 깊은 연기를 보며 감탄했다. 본인 역할을 장르적으로 뿜어낼 뿐만 아니라,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 죄의식까지 표현했다. 사려 깊은 생각을 하면서 연기한 게 느껴졌다. 김성규는 후반부에 더 큰 감정이 보여질 것 같아서 기대된다. 두 사람 연기만으로도 영화 보는 느낌이 들었다. 캐스팅 소식을 듣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는 연쇄살인극과 수사극이 섞여 색다르게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생생한 배우들의 연기도 차별점이다."
탁재영 작가는 '원작 메시지와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을까?' 우려했다. "원작은 과거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이들의 현재 피폐한 삶을 보여주고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 회상했다"며 "드라마에선 이들이 성인이 돼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변했는지 초점을 맞췄다"고 귀띔했다. "원작 메시지가 의미 있어서 시간이 흘러도 머릿속에 떠올랐다"며 "굳이 그 좋은 메시지를 바꿀 필요는 없었다. 좀 더 재미있게 보여주는 게 내 의무였다"고 강조했다.
돼지의 왕은 중학생 시절 학교 폭력 기억을 되짚으며 이야기가 전개됐다. 4회까지 공개한 상태인데, 학폭 장면이나 경민이 복수하는 장면은 다소 잔혹했다. 심리치료사 상담을 통해 아역배우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배려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중학생 시절 가장 많은 폭력이 벌어졌다"며 "솔직하게 다루고 싶었다. 안 그러면 가짜가 되고, 시청자들에게 거짓말하는 것 같았다. 안정적인 촬영 환경이 조성 돼 좀 더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탁 작가는 OTT 장점을 활용해 자기검열없이 자유롭게 극본을 썼다. "이런 상황, 캐릭터, 액션 등이 '지상파에서 가능했을까?' 싶다"고 할 정도다. '어른들의 스릴러'라고 생각, 19세 이상 관람가로 설정했다. 초반에는 폭력이 적나라해도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해 리얼하게 가자"고 마음 먹었다. "학폭 피해자가 가해자한테 복수하면서 연민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며 "5~6회 이후부터 '경민의 사적인 복수가 정당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도덕적 딜레마를 느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은 수없이 많았다. 실제 사회에서도 여전히 학폭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탁 작가는 "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폭만 다루지 않는다"며 "좀 더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왜 강자와 약자로 서열을 나누고, 그 사이에는 폭력이 존재하는지?' 묻는다. 이런 큰 주제를 다루기 위해 학폭이라는 소재가 필요했다. 초반에는 학폭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중·후반부로 갈수록 더 큰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전에도 학교폭력 문제 얘기를 많이 했다. 성과주의를 중시하는 사회 풍조와 학생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이 전부인 세계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학교는 한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의 일부인데, 그런 점이 학폭을 키웠다. 어른이 돼서도 어떤 사람이 지배하는 세계가 너무 하나로 돼 있는 게 문제다. 앞으로 사회가 나아지기 전에 개인으로서 먼저 극복하려면 '지금 겪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연 감독)
연 감독은 작품에 항상 사회적인 메시지를 녹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을 비롯해 영화 '부산행'(2016) '염력'(2018) '반도'(2020) '방법: 재차의' 등이 그랬다. 최근에는 혐오를 통해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지옥으로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가 돼지의 왕을 봤다고 하더라. 학교에서 따돌리는 행위 등이 미국에서도 흔히 있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작품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반응을 보며 내가 사는 세상이 다른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고 털어놨다.
"한국 학생들에게는 학교가 전부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90% 생활하지 않느냐. 학교가 늦게 끝나고 집에서는 잠만 자 가정의 역할이 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왕따는 세상의 전부일 수 있겠다' 싶더라. 한 커뮤니티에 올인하는 것보다 여러 커뮤니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한 커뮤니티에 올인 해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구조다. 특히 예술하는 분들이 '올인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될 수 있으면 많은 커뮤니티로 분배해 상처, 기쁨 등을 보완해야 한다. "(연 감독)
탁 작가는 돼지의 왕이 학폭 가해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길 바랐다. 극중 학폭 피해자들은 20년이나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데, 가해자들은 학창 시절의 즐거운 추억으로 생각해 공분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다. "'어렸을 때 한 번쯤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 않느냐"면서 "누군가에게는 장난일지 모르겠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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