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출근한 박민영 "쉬운 길은 재미 없어요"

뉴시스       2022.04.08 06:01   수정 : 2022.04.08 06:01기사원문

[서울=뉴시스] 배우 박민영. 2022.04.07(사진=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은해 기자 = "쉬운 길은 재미 없잖아요."

데뷔 17년차 배우 박민영(36)은 도전이 두렵지 않다. 여전히 연기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매일 달콤한 결실만 얻을 수는 없다는 걸 안다.

무언가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면 기꺼이 제 몫이라 여긴다. 최근 종영한 JTBC 주말극 '기상청 사람들-사내연애 잔혹사 편' 역시 즐거운 도전이었다. 그는 기상청 총괄 2팀 과장 '진하경'으로 분했다. 엘리트 예보관이자 차도녀로 명성이 자자하다. 생소한 기상학 용어를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일반인은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예보 토의를 주도해야 했다.

"'기상청 사람들' 전에는 기상에 무지했어요. 뉴스 마지막 코너에서 일기 예보를 해주면 숫자와 우산 사진만 봤거든요. 하경이를 연기하면서 기상 용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됐어요. 국지성 호우를 왜 예보하기 어려운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로 지식도 늘었어요. 실제 기관이 배경이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왜곡 없이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해드리려고 했어요."

캐릭터적으로는 하경이 처한 상황에 주목했다. 하경은 5급 기상직 공무원으로 입사해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주변에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많고 선배가 부하 직원일 때도 있다. 그는 "하경이가 냉정한 성격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직장 생활 중 만들어진 성격도 분명히 있다. 책임지는 역할을 맡다 보니 즐겁거나 들뜬 티를 낼 수 없다. 최대한 감정 동요를 없애고 건조하게 표현했다. 날씨로 비유하면 10월 말 11월 초쯤 쓸쓸한 분위기가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극 초반에는 기상청 안에서 벌어지는 사내 연애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됐다. 그러나 4회 이후 메인 커플 진하경과 '이시우'(송강)의 애정 서사보다는 서브 커플 '한기준'(윤박)·'채유진'(유라) 결혼 생활, 조연, 가족 이야기 비중이 많이 늘어났다. 로맨스 코미디가 어느새 휴먼 가족극 분위기를 띠게 되며 실망한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하경과 시우가 행복하게 사귀는 시간보다 헤어지고 갈등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늘 시청자 입장에서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본다는 박민영은 그런 불만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대본이 4회까지 나왔을 때 출연을 결정했어요. 내용이 정말 흥미롭고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런데 1회부터 4회까지 전개가 빠르다 보니 뒷부분은 조금 막힐 것 같았어요. '항상 맑은 날만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사막이 된다'는 대사처럼요. 초반에 주인공 두 사람이 급격히 가까워지면 필연적으로 실연이 찾아올 거라 생각했어요. 시청자분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도 맑은 날이 또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다행히 해피엔딩이었는데 저는 마음에 들어요."

뜨거운 반응을 얻은 명장면 비하인드도 공개했다. 2회에서는 기준이 자신의 지분은 7%뿐인 신혼집의 반을 요구했다. 하경은 바람피운 것도 모자라 악착같이 돈을 뜯어 가려는 전 연인에게 분노했다. 그는 "'우리가 보낸 시간은 뭐였니?'라는 똑같은 대사를 해도 10년 사귄 커플 이야기라면 무게가 다르다. 두 사람이 보낸 10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크다고 느꼈다. 하경이가 감정을 꾹꾹 눌러 참다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찍을 때는 힘들었지만 기분 좋았다"고 회상했다.

"기준의 바람을 목격하고 가방으로 때리는 건 제 아이디어였어요. 하경이 또래 여자로서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충격과 울분이 상당할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하경이가 차분한 성격이라도 울면서 기준이를 때릴 정도는 될 것 같았어요. PD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봤더니 좋다고 해주셔서 대본보다 장면 수위가 높아졌어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요. 헤어지자고 말하자마자 기준이가 '그래' 하는데 자존감과 모든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어요."

각각 전 연인, 현 연인으로 분한 윤박, 송강과 연기 호흡은 완벽했다. 박민영은 윤박 아닌 한기준을 상상할 수 없었다. "윤박만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다. 윤박이었기 때문에 덜 밉고 이해할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송강의 눈이 애정신 몰입감을 더했다. "연애 장면을 찍을 때는 상대역과 호흡이 중요하다. 송강은 눈이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친구다. 제가 눈을 보고 연기하는 스타일인데 유난히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서울=뉴시스] 배우 박민영. 2022.04.07(사진=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기상청 사람들'은 JTBC 드라마 흥행 부진을 끊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JTBC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대부분 드라마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지프스: the myth' '너를 닮은 사람' '인간실격' '구경이'는 스타 캐스팅을 내세웠지만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최고 시청률 6.7%(닐슨 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한 '시지프스: the myth'도 4.4%로 종영했다. '알고있지만' '라이브온' 'IDOL [아이돌 : The Coup]' '한 사람만'은 0%대 시청률로 흥행 참패했다.

지난 2월2일 4.5% 시청률로 시작한 '기상청 사람들'은 4회 7.8%까지 상승했다. 이후 6~7%대 안정적인 성적을 냈다. 지난달 30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3월21일~27일 비영어권 TV 부문 시청 시간 부문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첫방송 이후 넷플릭스 TV프로그램부문 글로벌 TOP10에 꾸준히 오르는 등 해외 인기도 상당했다. 박민영은 흥행작이 늘어나면서 부담감이 생기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짊어지는 짐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책임감이 커지고 잘하고 싶으니까 더 치열하게 연기한다"며 웃었다.

"이번 작품에서 시청률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았어요. 지금 느낀 약간의 아쉬움과 감사함이 또 다른 작품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제 연기 열정을 풀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기분 좋은 부담감이에요. 매번 잘될 수는 없지만 사랑받는 작품을 만난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에요."

'기상청 사람들'은 박민영의 첫 사전제작 드라마였다. 배우 생활 중 쪽대본 생방 촬영, 3달 만에 드라마가 완성되는 환경 모두 경험했다.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찍는 사전제작 방식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었다.

"장점은 차분하게 찍으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단점은 피드백을 바로 받지 못하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한 회 방송하고 반응을 볼 수 있었어요. 이제는 찍어놓은 회차가 차례로 반영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요. 시청자분들의 반응을 미리 알았다면 좀 더 니즈에 맞춰 촬영하지 않았을까요."

박민영을 대표하는 수식어는 '오피스로코 퀸'이다.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의 비서, '그녀의 사생활'(2019)은 큐레이터, '기상청 사람들'(2022)에서는 예보관으로 분했다. 그렇다고 그의 무대를 '로코'에 한정 지을 수는 없다. 2010년 이전에는 학원물, 2010년대 중반까지는 청춘물에서 활약했다. 30대에 접어든 후에는 직업여성을 주로 연기했다. "지금 제 나이에 가장 어울리고 공감되는 게 오피스물이다. 10년 뒤쯤에는 '내조의 여왕'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내뱉기 힘든, 오글거리고 불편한 대사도 제가 하면 덜 이상하게 들린대요. 만나는 PD님마다 해주시는 칭찬이에요. 원래 장난기 많은 성격인데 코믹 연기할 때는 장점이 돼요. 지금은 뭔가 보여줘야겠다, 변신해야겠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면 더 발전하고 싶어요. 연기 인생을 날씨에 비유한다면 우리나라 아닐까요. 봄·여름·가을·겨울 확실하고 가끔은 태풍, 가뭄, 홍수도 있어요. 저 역시 제 나이 때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겪었어요. 저는 늘 안에서 싸우고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박민영은 "'기상청 사람들'은 제가 기상청에서 실제로 근무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힘든 작품이었다.
고민이 많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매일 밤잠 못 이룰 정도로 어려운 숙제의 연속이었다"며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 쾌감이 큰 것처럼 좋은 경험이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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