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금융권력 러 중앙은행 총재…3연임 성공 후 전쟁 찬성 돌변

뉴시스       2022.04.12 12:20   수정 : 2022.04.12 12:20기사원문

기사내용 요약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로 러 금융개혁 진두 지휘했지만

우크라 침공 이후 서방 제재 맞서 경제 살리기에 주력

【모스크바=AP/뉴시스】 옐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23일(현지시간) 스위프트(SWIFT)를 대체하는 자체 금융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13년 6월 24일 경제발전무역부 장관을 지내던 나비울리나 총재가 마지막으로 정부 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2018. 5. 24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8년 동안 재직해오면서 러시아의 통화정책을 현대화하고 국제 시장 채권 유치에 힘썼다. 그러나 최근 6주새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 경제가 콧노래를 부르도록 하는데 가담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 보도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서방 제재에 맞서 러시아 경제가 붕괴하지 않도록 막는 핵심 당국자중 한 사람이다. 수십년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그는 지금 루블화 안정과 물가상승 방지에 총력을 기울리고 있다.

현재까지 꽤 성공적이다. 일련의 비상조치를 통해 폭락했던 루블화를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려 놓았다. 비상시 기준금리였던 20%를 지난주 17%로 내렸다. 뱅크런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루블화 안정이 일시적인 성과일뿐 국제 거래 사용을 금지하는 수많은 규제로 인해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나비울리나 총재는 국제 무역으로부터 제재 이상으로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해외 송금을 금지했고 외국 고객과 거래하는 러시아 기업들이 외화수입의 80% 이상을 루블화로 바꾸도록 강제했다.

외화예금계좌 인출금의 상한을 정함으로써 달러와 유로로 저금을 해온 수많은 러시아인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중앙은행은 계좌의 90%가 지불 상한에 못미치는 소액 계좌여서 부자들만 해당되는 규제라고 밝혀왔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시장에 맡기는 자유주의 경제를 지시와 복종의 체제로 바꾸었다. 러시아는 자본 규제를 2006년 폐지했고 2014년 루블화 환율이 시장이 정해지도록 한 것도 나비울리나였다.

오래도록 물가상승을 잘 저지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나비울리나 총재가 지금 초인플레에 직면해 있다. 지난달 16.7%에 달하는 물가상승은 2015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 경제 전반의 전망도 어둡다. 제재로 수입이 차단되고 러시아 진출 서방기업 수백곳이 철수하면서 러시아인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공장들이 원자재 부족으로 생산을 중단했다. 유럽부흥개발은행 전문가들은 올해 러시아 경제가 10% 위축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금융시장과 보험회사, 투자펀드를 직접 규제하고 은행을 감독하며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등 서방국 중앙은행보다 권한이 막강하다. 나비울리나가 취한 조치중 일부는 서방 제재에 대한 반격 목적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수백억달러의 러시아 주식을 처분하는 걸 금지한 일이 대표적이다.

전쟁 전까지 나비울리나는 러시아 금융 시장의 방만함을 정리한 공로로 서방 투자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현재는 정반대다. 서방 입장에서 볼 때 나비울리나가 푸틴의 전쟁 야망을 지지하는 것이 이해가 잘 안된다. 러시아 당국자들과 달리 그는 전쟁에 대한 반대 또는 지지를 표명한 적이 없다. 전쟁 전 나비울리나를 만났던 사람들에 따르면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군사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봤다. 반대로 푸틴 측근으로서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 러시아 주재 미 대사 마이클 맥폴은 당초 나비울리나 총재가 전쟁에 반대할 것으로 봤으나 그러지 않자 제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장으로써 탁월한 전문성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는 푸틴의 야만 행위를 돕는다"는 것이다. "사임하거나 전쟁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기에 전쟁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 등 미 언론들은 최근 나비울리나가 사임할 것으로 예상하는 기사를 실었지만 푸틴이 나비울리나 총재를 세번째로 연임시켰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연임 며칠 뒤 직원들에게 회의적 태도를 버리고 경제 구호에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전쟁 발발 이후 나비울리나 총재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있다. 복장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브로치를 메시지 전달 매체로 자주 사용했던 그가 아무런 장식없는 검은 색 또는 짙은 색 정장만을 입고 있다.

서방의 강력한 제재로 그가 놀란 것처럼 보인다. 제재로 러시아 중앙은행이 보유한 막대한 외환이 동결됐다. 국내에서 동결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가 우리 돈을 적들 주머니에 맡겼다"고 주장한 러시아 의원도 있다.

나비울리나의 전문성과 청렴성을 잘아는 사람들은 그같은 비판이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남편이 대학총장인 나비올리나는 최근 재규어 S-타입을 구매했다. 중앙은행에서 20년 근무한 끝에 산 차다. 공산주의 시절 교육을 받은 나비울리나는 정부 근무를 거치면서 시장경제에 접했다. 모스크바에서 1100km 떨어진 우파에서 태어나 타르타르 소수민족 노동자 가족에서 성장했고 소련 말기 모스크바국영대학교에서 경제학을 배웠다. 당시 나비울리나는 마르크스 경제학에 매우 정통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1990년대 대기업과 러시아 경제부에서 근무하면서 시장경제를 접했고 예브게니 야신 자유주의 혁신가의 제자가 됐다. 1999년 푸틴의 측근이 돼 연구원에서 푸틴의 경제정책을 입안했다. 지난 20년 동안 나비울리나는경제부장관, 대통령 정책자문, 중앙은행장 등 푸틴의 경제 참모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정치적 야심이 없고 물가억제에 적극적인 점 덕분에 푸틴의 신뢰를 받아왔다.

나비울리나는 서방과의 관계도 밀접했다. 주요 20개국(G20) 등에 참석하면서 유럽과 국제금융중심지 바젤을 자주 방문했다. 유로머니지는 2015년 나비울리나를 "올해의 중앙은행 총재"로 선정하기도 했다.
영어 실력도 정책 연설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이다.

푸틴의 초기 경제 참모들 가운데 상당수가 2000년대와 2010년대 권위주의 복귀에 실망해 이탈했다. 그러나 나비울리 총재는 측근으로 계속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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