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특급' 뒤로 줄세운 비네도 채드윅..빈티지 마다 선명한 매력, 묘하게 잡아끄네
파이낸셜뉴스
2022.12.08 10:34
수정 : 2022.12.08 13:33기사원문
에라주리즈, 최고의 와인 비네도 채드윅 버티컬 빈티지 시음
이윽고 패널들의 신중한 평가가 끝나고 와인이 공개되자 장내엔 적잖은 긴장감이 흘렀다. 행사 와인에는 칠레 와이너리 비냐 에라주리즈의 비네도 채드윅(Vinedo Chadwick), 세냐(Sena), 돈 막시미아노(Don Maximiano) 등을 비롯해 프랑스 보르도 특급와인 샤또 라피트 로췰드(Chateau Lafite Rothschild), 샤또 라뚜르(Chateau Latour), 샤또 마고(Chateau Magaux), 이탈리아 수퍼투스칸 솔라이아(Solaia), 티냐넬로(Tignanello) 등 정말 쟁쟁한 와인이 포함돼 있었다.
"설마, 파리의 심판(1976년)처럼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때쯤 결과가 발표되자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 보르도 특급와인들이 뒤로 쭉 밀린 것이다. 샤또 라피트 로췰드(2000년)는 3위, 샤또 마고(2001년) 5위, 샤또 라뚜르(2000년), 샤또 마고(2000년)은 6위였다. 1위는 놀랍게도 비네도 채드윅(2000년), 2위도 세냐(2001년). 모두 칠레 와인이었다. 보르도 특급 와인들은 역대 최고 빈티지로 꼽히는 2000년과 2001년이어서 놀라움은 더 컸다. 이탈리아 수퍼투스칸 솔라이아(2000년)은 샤또 라뚜르(2001년)과 함께 10위에 머물렀다.
이 날은 칠레 와인이 세계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안기며 데뷔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충격적인 결과에 입을 다물지 못한 전 세계 와인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1976년 미국 나파밸리 와인들이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코를 눌러버린 '파리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에 빗대 '베를린의 심판(The Judgement of Berlin)'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후 '베를린 테이스팅(The Berlin Tasting)'은 2014년까지 10년 동안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도시를 돌며 18회나 같은 방식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개최했다. 결과는 늘 칠레 와인이 최상위권을 휩쓰는 압승의 반복이었다. 칠레 와인이 9번이나 1등을 차지했으며 특히 돈 막시미아노는 5번이나 1위에 올랐다.
지난 11월 말 서울 강남구 레스토랑 도멘 청담에서 일부 전문가를 대상으로 베를린 테이스팅의 주인공 '비네도 채드윅'을 빈티지별로 경험해보는 '버티컬 테이스팅' 행사가 열렸다. 비네도 채드윅은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의 정석이라는 평가를 받는 와인으로 이날 행사에는 2009 빈티지, 2011 빈티지, 2015 빈티지, 2018 빈티지 4종의 와인이 준비됐다.
비네도 채드윅은 비냐 에라주리즈의 3대 오너 알폰소 채드윅 에라주리즈(Alfonso Chadwick Errazuriz)에 헌정된 와인으로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100%로 만들어진다. 마이포 밸리(Maipo Valley) 해발 670m의 안데스 산맥의 산자락에 위치한 15ha 규모의 이 포도밭은 폴로 국가대표를 지냈던 알폰소 채드윅의 개인 폴로 경기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고령으로 폴로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1992년 그의 아들인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이 아버지의 폴로경기장을 갈아엎고 포도밭으로 조성해 만드는 와인이다.
■2009 빈티지, 햇볕에 그을린듯한 독특한 아로마에 스모키함까지
비네도 채드윅 2009는 2시간 정도 더블 디캔팅을 진행한 뒤 서빙됐다. 13년이나 지난 올빈 와인임에도 더블디캔팅을 진행할 정도로 강건하다는 것에 우선 놀랐다. 잔에 따라진 와인은 루비빛에 테두리만 약간 가넷빛이 돈다. 그만큼 아직 숙성력이 더 있다는 얘기다. 잔을 가까이 하면 아주 잘 졸여낸 카시스 향이 올라온다. 아주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그런 심연한 향이다. 이어 검은 과실의 아로마와 붉은 꽃향, 가죽 향, 오크 향이 스쳐가는데 초콜릿 향과 복잡한 향신료 향도 섞여있다. 잔을 기울이지 못하고 계속 코를 들이밀게 만드는 복합적인 향이 진짜 인상적이다.
입에 살짝 흘려봤다.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기막힌 산도다. 턱밑을 자극하기 시작해 눈시울까지 올라올 정도로 강력한 산도는 와인에 발랄함을 더한다. 검은 과실 위주의 아로마도 아주 독특하다. 출렁이는 과즙의 아로마가 아닌 가을 햇볕에 바싹 그을린듯 마른 골격의 아로마다. 잘게 쪼개져 얇게 퍼지는 스모키 한 느낌의 타닌과 함께 이어지는 초콜릿 향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질감은 미디엄 풀바디로 시간이 지날수록 풀바디로 변해간다.
■2011 빈티지, 과즙 출렁대는 아로마에 살집이 장난 아니네
2011 빈티지는 보랏빛이 살짝 도는 루비빛 와인이다. 잔을 가까이 하면 검은 과실 향이 지배적으로 들어오며 감칠맛 나는 향도 있다. 대부분 산도가 좋은 와인에서 나는 냄새다. 입에 넣어보면 역시 산도가 굉장히 좋다. 쨍한 느낌까지 들 정도로 산도가 높다. 아로마는 검은 과즙이 가득 들어차 있다. 바싹 마른 듯한 아로마의 2009 빈티지와는 정반대의 느낌이다. 질감도 풀바디로 상당히 무거우며 타닌도 제법 두껍다. 와인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살집이 좋다는 느낌이 든다. 같은 포도밭의 와인이지만 이처럼 다르게 나온다는 것도 신기하다.
와이너리 관계자는 "2009 빈티지는 따뜻한 해였고 2011 빈티지는 굉장히 서늘해서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와인이 나왔다"며 "2009 빈티지까지는 새 오크를 통해 숙성했지만 2011빈티지부터는 새 오크 사용을 줄이고 더 큰 배럴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네도 채드윅은 2011 빈티지부터 와인 스타일을 다르게 바꾸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와인이 무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확시기를 좀 더 일찍 가져가고 알코올 도수도 낮춰가고 있다고 했다. 2009 빈티지는 알코올 도수가 14.5%이며 2011 빈티지는 14.0%, 그 이후 빈티지는 13.5%로 낮춰 생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네도 채드윅은 산도가 더 높아지고 엘레강스하게 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 빈티지는 역대급..부드럽고 진한 아로마에 기막힌 산도 감동적
2015 빈티지는 검은 빛이 돌 정도의 진한 루비빛의 와인이다. 잔에서도 검은 과실 아로마가 지배적으로 올라온다. 약간의 허브향과 매콤한 향신료 향도 있다. 입에서는 굉장히 부드러운 과즙이 들어오는데 산도까지 좋아 와인이 상당히 발랄하다. 아로마는 그냥 검은 과실이다. 타닌은 초기에는 거의 존재감이 없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질감은 미디엄이나 미디엄 플러스로 무겁지 않다. 와이너리 관계자는 "2015 빈티지는 약간 더운 해였지만 과실의 아로마와 집중도가 좋고, 타닌이 아주 이상적으로 발현돼 좋은 와인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8 빈티지는 2009 빈티지와 함께 특별한 와인이다. 약간 서늘한 기후에서 만들어진 와인으로 와이너리에서 아주 예외적일 정도의 베스트 빈티지로 꼽는 와인이다. 잔에 따라진 와인은 진하지 않은 루비빛을 띤다. 잔을 가까이 하면 잘 졸인 카시스를 마주한듯 진한 검은 과실 아로마가 일품이다. 2009 빈티지에서 마주했던 아주 먼곳에서 몽글몽글 덩어리져 피어오르는 그런 진한 아로마다. 좋은 삼나무 향에 오크 향, 가죽 향까지 더해져 복합적인 향이 휘몰아친다. 입에 넣어보면 기막힌 산도에 감동한다. 그러나 여기가 다가 아니다. 다시 치솟기 시작하는데 눈물샘까지 자극할 정도로 아득하다. 아로마는 검은 과실향으로 살집이 아주 좋다. 아직 한참 어린 와인인데도 타닌이 잘게 쪼개져 얇게 깔리는게 마치 성품좋은 미국 나파밸리 까베르네 소비뇽을 만난 착각도 든다. 그만큼 굉장히 부드럽다. 질감은 미디엄에서 미디엄플러스로 무겁지 않다. 왜 예외적인 빈티지라 하는지 먹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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