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텅빈학교, 아이들과 나눠 동네거점으로

연합뉴스       2023.06.17 06:05   수정 : 2023.06.17 06:05기사원문
순천 구도심 남초교 학생 급감, 남은 시설 주민복합센터로 리모델링 로컬푸드식당·도서관·여가교실로 활용…학교재생 '전국 첫 사례' 주민은 어린이에게 텃밭 가꾸기·요리·사진 가르치며 상생의 길 모색

[도시재생 현장을가다] ⑤텅빈학교, 아이들과 나눠 동네거점으로

순천 구도심 남초교 학생 급감, 남은 시설 주민복합센터로 리모델링

로컬푸드식당·도서관·여가교실로 활용…학교재생 '전국 첫 사례'

주민은 어린이에게 텃밭 가꾸기·요리·사진 가르치며 상생의 길 모색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갈수록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쇠퇴한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순천남초등학교의 주민복합문화시설 '세대공감비타민센터' [촬영 백도인]


(순천=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전남 순천시 구도심에 있는 남초등학교는 1906년 사립 승명학교로 시작해 1911년에 공립보통학교로 공식 개교한, 순천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이다. 한때 70개 학급에 학생 수만 2천500명이 넘었던 가장 규모가 큰 학교이기도 했다. 2부제 수업을 해야 할 만큼 학생 수가 많다 보니 교실과 급식실 등 학교 시설도 그에 맞춰 늘어났고 운동장도 2개나 됐다. 그러나 구도심이 쇠락하며 남초등학교도 학생 수 급감세를 피해 가지 못했다. 이제는 전교생이 240명 안팎으로 한창때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교실과 운동장 등 학교 시설은 텅텅 비어 남아돌았고, 학교 입장에서는 이를 관리하는 게 큰 숙제였다. 관리비도 적잖게 들어 학교 재정을 압박했다.

빈 학교 시설을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해 학교도 살리고 지역 공동체도 살리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러나 시작은 쉽지 않았다. 어린이를 보호하고 교육하는 게 가장 큰 관심이자 목적일 수밖에 없었던 학교 입장에서는 선뜻 외부인들에게 문을 열어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달리 생각했다. 오히려 학교를 지역사회에 개방하는 게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주민들 대부분이 이 학교의 졸업생이자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인 만큼 학교와 아이들에게 누구 못지않은 애정을 갖고 있기도 했던 터였다.

생태 놀이터로 변모시킨 순천남초 운동장 [촬영 백도인]


오랜 논의와 설득에 학교가 결단을 내렸다. 2019년 8월 남초등학교 시설 일부를 주민에게 20년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하는 협약이 체결됐다. 전국 최초의 학교 재생사업이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학교가 내놓은 시설은 본관동 맞은 편에 있는 지상 3층에 전체면적 3천30㎡ 규모 건물이었다. 교실과 급식실 등으로 쓰던 건물로, 본관과 떨어져 있어 수업권 침해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점이 있었다. 주민들은 순천시·남초등학교와 함께 '학교 재생 테스크포스(TF)'를 만들고 구체적인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어린이들도 학교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만큼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켰다. 이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 남아도는 빈 운동장 하나는 어떻게 쓸지, 주민과 학교 및 학생의 상생 방안은 무엇일지가 모두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10여 차례에 걸친 협의를 거쳐 이 건물을 마을정원사업 협동조합, 로컬푸드 식당, 주민 교육 및 여가 시설, 작은 도서관이 들어서는 복합문화센터로 활용하기로 했다. 여기에 예비 청년 창업자나 예술단체들에 문호를 개방해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을 육성, 지속 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실현하는 토대로 삼기로 했다. 이름을 '세대 공감 비타민센터'로 짓고, 기존 시설을 최대한 원형대로 활용해 리모델링 비용도 최소화했다.

노래교실로 리모델링된 비타민센터의 한 교실 [촬영 백도인]


급식실을 바꿔 만든 로컬푸드 식당은 공유 부엌으로 쓰고 있다. 학교와 함께 요리 실습 시간을 개설해 학부모들이 이 학교 어린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기도 하고, 음식이 필요한 주민 행사를 할 때 쓰기도 한다. 기존의 교실은 노래교실, 탁구장, 세미나실 등으로 만들어 주민이 다양한 교육 및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로컬푸드 식당과 세미나실 등 일부 시설은 유료로 빌려주기도 하는데, 인근에 이런 문화공간이 없다 보니 수요를 맞추지 못할 정도로 인기다.

일부 공간에는 사진협회와 미술협회 등의 예술단체를 입주시켰다. 대신 전문성을 살려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관련 수업을 해주도록 조건을 달았다. 주민들은 운동장 일부를 생태 놀이터와 텃밭, 실습장 등으로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농작물을 기르거나 정원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최대한 학교와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줘 상생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폐쇄회로(CC) TV 및 가로등 확대 설치와 안심 통학로 조성, 골목길 보행환경 개선 등도 추진했다. 주민들은 골목 지킴이를 구성해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돕고,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운동장과 학교체육관 등의 이용 시간도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시설의 쓰임새를 공동 육아방, 엄마들의 쉼터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학교 측도 더욱 용도가 다양해진 이들 시설과 주민과의 긴밀한 협업을 지렛대 삼아 도심 속 산촌 유학이 가능한 생태특화학교를 만들어 학생 수를 늘려나갈 방침이다.

벽화를 그려 넣어 새로 단장한 어두웠던 학교 골목길 [촬영 백도인]


사업을 총괄하는 '비타민 저전골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의 이강철 사무국장은 "비타민센터는 문화 시설과 여가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구도심에 가장 필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주민의 요구와 수요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고 그때그때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과거 자신이 다녔던 학교, 현재 자녀와 손자·손녀들이 다니는 학교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여기에 그동안 구도심에 산다는 이유로 배울 수 없고 즐길 수 없었던 다양한 취미와 여가 생활까지 누릴 수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재주로 아이들에게 선생님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기만 하다.

비타민센터에서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요리수업과 정크아트 강의 등을 해주고 있다는 주민 김경주(42)씨는 "두 딸아이가 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 수업을 맡게 됐다.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을 위해 수업을 한다는 데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며, 아이들도 선생님이 된 엄마를 무척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도 구도심이어서 그동안 마땅히 갈 만한 문화시설이 없었다"면서 "비타민센터가 생기니 멀리 가지 않고도 여러 문화와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어서 무척들 좋아한다"고 전했다.

어린이들 의견을 반영해 부엉이 조형물을 넣은 학교 CCTV [촬영 백도인]


학교 역시 만족도가 높다. 학교를 주민과 지역사회에 개방하는 의미로 높은 담도 이미 헐어낸 터였다. 처음에 학교를 개방하면서 걱정했던 아이들의 안전이나 학습권 침해도 다행히 기우에 그쳤다.

순천 남초등학교 정소화 교감은 "무엇보다 아이들이 주민들로부터 다양하고 생생한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좋다.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도 매우 높다"면서 "학교가 주민의 쉼터 역할까지 한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 대한 주민과 동창회 등의 관심도 더 높아지고, 아이들의 등·하굣길도 더욱 안전해졌으며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학습권 침해 사례도 거의 없다"면서 "사실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는데 인제 와서 보면 학교를 개방한 것은 잘한 일 같다"고 덧붙였다.

이강철 사무국장은 "구도심 학교들의 공동화는 전국적으로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일이고, 피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학교의 남은 시설들이 지역사회와 학교 활성화의 토대가 되고, 주민과 학생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모범 사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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