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미소·격정적 타건…김도현 피아노 리사이틀
뉴시스
2023.06.17 06:40
수정 : 2023.06.17 06:40기사원문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지그시 감은 눈과 입가의 부드러운 미소. 마치 바람을 탄 듯 선율에 맞춰 흔들리는 어깨와 머리카락….
지난 13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김도현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긴 손가락으로 때로는 건반을 스치듯 가볍게, 때로는 온 힘을 다해 격정적으로, 무대 위에 물방울을 피어올리고, 말발굽소리를 퍼트렸다.
2021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와 현대 작품 최고 연주상을 수상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김도현은 이날 슈베르트와 리스트, 라벨의 음악을 풀어놨다. 그가 어린시절부터 좋아한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가곡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시에서 영감을 받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와 '라 발스'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첫곡은 '리타나이'(위령기도). 원제는 '모든 영혼을 기리는 날의 기도문'이다. 슈베르트가 요한 게오르크 야코비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더없이 평온한 음악을 만들어냈고, 리스트가 이를 편곡했다. 김도현은 눈을 감고 음악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섬세한 다이내믹과 기교로 관객들을 슈베르트와 리스트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어 '물 위에서 노래함'의 선율이 울려퍼졌다. 미끄러지는 듯한 타건과 섬세한 기교가 물이 찰랑이고, 서서히 몰아치는 장면을 관객들의 눈 앞에 그려보였다.
슈베르트의 '마왕'에서는 김도현의 매력이 한껏 드러났다. 그는 건조하고 거친 타건으로 아픈 아들을 말 뒤에 태우고 달리는 아버지의 불안한 마음을, 달콤하고 감미로운 터치로 병든 아들을 죽음으로 유혹하는 마왕을 묘사했다.
1부 마지막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이 장식했다. 평소 소박한 작품을 써온 슈베르트가 창조해낸 가장 규모가 크고 탄탄한 구성미의 작품이다.
김도현은 손끝으로 낭만을 향해 떠나는 방랑자의 모습을 묘사한다. 탄탄한 화음과 아르페지오로 활기 넘치는 여행의 시작을, 침잠하는 듯한 선율로 길을 잃은 방랑자의 길고 깊은 슬픔을 보여준다.
절정으로 향할 때는 손가락이 보이지도 않는 빠른 템포, 겹겹이 쌓이는 소리의 향연으로 거대한 음악의 파도를 선사했다. 격정적인 타건에 안경이 흘러내리고,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었다. 관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2부는 모리스 라벨의 작품들로 꾸며졌다. 슈베르트가 리트라는 장르로 시를 이해한 것과 달리 라벨은 시의 언어를 고도로 발달된 기악으로 풀어냈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는 그가 알루아시위스 베르트랑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낸 작품이다. 김도현은 찰랑거리는 수면의 물방울 소리와 물보라를, 사막같이 메마른 땅과 스산한 종소리를 만들어냈다.
최고의 난이도로 유명한 마지막 악곡 '스카르보(호기심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작은 악마)'에서는 때로는 섬세한, 때로는 폭발적인 타건을 이어가며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었다.
라벨의 '라 발스'가 뒤를 이었다. 프랑스어로 왈츠라는 뜻으로 원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으로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독주 피아노를 위한 편곡으로 연주된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목과 달리 연주는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로 시작된다. 그러다 이 작품이 왈츠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듯 3박자의 화음을 울리고, 다시 감미로운 꿈과 가벼운 악몽이 겹겹이 교차하는 듯한 현란한 연주로 이어진다. 땀에 흠뻑 젖어 100분간의 무대를 마무리한 김도현에게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김도현은 이날에 이어 오는 9월 중 제8회 M 클래식 축제 야외 수변무대 리사이틀 '문 소나타', 10월11일 M 클래식 축제 메인콘서트, 12월5일 'M 아티스트 김도현 리사이틀2' 등 연간 4회 마포아트센터 기획 공연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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