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어크로스…', MCU보다 돋보이는 멀티버스 활용법
뉴스1
2023.06.20 14:30
수정 : 2023.06.20 14:30기사원문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블 코믹스 '스파이더맨'의 영화 판권을 보유한 소니 픽처스에서 만든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감독 켐프 파워)는 새로운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샤메익 무어 분)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전편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에서 마일스 모랄레스는 우연히 방사능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갖게 되고, 우주의 여러 평행세계에서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여러 종류의 '스파이더맨'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스파이더우먼 그웬 스테이시(헤일리 스테인펠드 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웬은 누구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에 고뇌한다. 경찰 서장인 아버지 조지 스테이시는 자신의 딸이 스파이더우먼인지도 모르고 스파이더우먼을 추적 중이다. 스파이더우먼이 딸 그웬의 오랜 친구 피터 파커를 죽인 범인이라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웬의 세계에서 피터 파커는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신이 만든 약물을 먹고 리자드가 됐고, 스파이더우먼으로부터 저지를 받던 중 사고를 당해 죽었다. 그웬은 괴물의 정체가 친구 피터 파커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이후로 조지는 살인자 스파이더우먼을 쫓는다. 결국 그웬의 정체는 조지에게 발각되게 되는데, 조지는 서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인해 딸을 그대로 연행해 가려고 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것에 상처 받은 그웬은 마침 멀티버스의 무너진 질서를 되찾기 위해 와 있었던 미겔 오하라(오스카 아이삭 분)와 제시카 드루 등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들로 구성된 정예팀의 도움을 받아 멀티버스의 세계로 들어간다.
한편 마일스 모랄레스는 학생과 스파이더맨의 삶을 병행하느라 고단한 시간을 보낸다. 진로 등으로 부모인 제프 모랄레스, 리오 모랄레스와 갈등하는 중에도 악당이 등장하면 달려가 히어로 노릇을 해야한다. 현재 그의 세계에서는 과학자였다가 알 수 없는 물질들로 인해 온 몸에 구멍이 생긴 괴물 스팟이 출몰해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상황. 스팟은 마일스 모랄레스를 문 거미를 평행 우주에서 데려온 과학자였으며 전편에서 마일스 모랄레스와 킹핀의 싸움 중 일어난 폭발 사건으로 인해 몸에 검은 점 형태의 포털을 여러 개 갖게 됐다. 그는 자신의 몸에 붙은 포털을 이용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며 멀티버스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던 중에 그웬이 마일스의 앞에 등장한다. 차원이 다른 탓에 서로를 그리워하기만 했던 두 사람은 반가운 재회를 한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멀티버스'의 개념을 활용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MCU 영화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멀티버스는 과거 여러 영화 속 피터 파커들을 소환하며 관객들의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게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멀티버스'는 다양성과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고민하게 만드는 장치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는 멀티버스 안에서 여러 종류의 스파이더맨을 만나볼 수 있다. 마일스 모랄레스와 같은 흑인 스파이더맨 뿐 아니라 긍정적인 인도인 스파이더맨 파비트르 프라바카르, 특수요원이자 임신한 흑인 여성 스파이더우먼 제시카 드루, 혁명가이자 밴드로 활동하는 펑크 스파이더맨 호비 브라운, AI 스파이더맨 벤 라일리 등 무려 280개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등장한다.
'공식설정 사건'이라는 개념은 이번 영화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마일스 모랄레스에게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인지, 내가 주체로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인지'를 숙고하게 만든다.'공식설정 사건'이란 모든 차원의 스파이더맨이 겪고 있고, 겪어야만 하는 공통적이면서도 운명적인 사건을 말한다. 예컨대 모든 스파이더맨의 세계에서 스파이더맨은 가까운 가족의 죽음(마일스 모랄레스가 삼촌 애런)을 겪어야 하며, 경찰 서장은 악당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아버지가 최근 경찰 서장으로 진급한 마일스 모랄레스는 그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나서고 싶어하지만, 멀티버스의 세계에서 생긴 변칙이 가져올 부정적인 여파는 크다. 이를 막기 위해 미겔 오하라가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라는 차원 이동조직을 만들었다.
서사적으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마일스 모랄레스가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다소 익숙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멀티버스라는 세계와 그 세계의 질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다양한 사건들이 복잡하게 맞물리는 과정들을 디테일하게 그려낸 덕에 전혀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다. 흥미로운 디테일로 가득한 이야기가 스피디하게 흘러가버려 14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극 중 그웬 스테이시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마일스 모랄레스를 연기한 샤메익 무어의 말을 재언급하며 "이 영화는 100번쯤 봐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다소 과장됐으나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로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물리학적인 설정들과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이해하며 즐기고 싶다면 'N차 관람'이 필요할 수 있다. 코믹스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그림체와 작법이 매력적이고, 차원에 따라 다른 스타일의 작화를 보여주는 것도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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