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입원제로 '묻지마 칼부림' 해결될까?

뉴스1       2023.08.30 05:31   수정 : 2023.08.30 05:31기사원문

최근 ‘묻지마’ 칼부림에 이어 무차별 '테러 ·살인' 예고가 잇따르면서 공항 보안 경비가 강화된 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무장한 경찰특공대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2023.8.9/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우리나라 정신과 병상 유형별 수요 대비 공급(2020년)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정신과 환자 1일당 입원료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정신질환자 1회 입원료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편집자주]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의사 수 부족이 원인으로 거론되나 의료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 배출을 늘리는 것과 함께 '나쁜 의료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논쟁적 존재'가 되는 김 교수가 앞으로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를 통해 의료계 문제를 진단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서울=뉴스1) = ‘묻지마 칼부림’ 범죄가 잇따르자, 정부와 여당이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사법입원제도란 정신질환이 악화돼 다른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법원의 판결에 의해 입원 치료를 받게 하는 제도다.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자의 경우 환청이 들리는 등 상태가 나빠져도 치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면 ‘묻지마 칼부림’을 막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면 조현병 환자 같은 정신질환자들은 잘 치료받고, 환자 가족들은 긴 병을 앓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 무거운 짐을 덜 수 있을까? 우리가 ‘위험한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격리하기 위해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면 법원이 입원시킨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도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일찍 발견해서 초기에 집중적으로 치료하면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처음 정신질환이 발병했을 때, 대학병원이나 큰 종합병원 정신과와 같은 급성기 환자를 치료하는 곳에서 제대로 치료받아야 한다. 만약 처음 발병한 환자가 만성화된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발병 전 상태에 가깝게 회복되지 못하고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급성기 환자를 치료하는 병상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만성기 환자를 치료하는 병상은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 대학병원이나 큰 종합병원처럼 한 달 이내의 짧은 입원 기간 발병 초기 환자를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급성기 환자용 병상은 수요 대비 29%에 불과하지만, 정신병원처럼 치료 강도는 낮지만 오랜 기간 환자를 입원 치료하는 만성기 환자용 병상은 수요 대비 6배나 된다. 처음부터 제대로 치료받으면 회복될 수 있는 많은 청소년 정신질환자가 대학병원이나 큰 종합병원이 아니라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만성화되고 있다.

급성기 환자를 치료해야 할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의 정신과 병상이 부족한 이유는 정신과 환자 입원료가 싸기 때문이다. 급성기 정신병상의 1일 입원료는 평균 약 18만원으로 미국의 1/3~1/4 수준에 불과하고, 환자를 오래 입원시키는 만성기 정신병상의 1일 입원료는 미국의 1/10 수준에 불과하다. 급성기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려면 적자가 나니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이 정신과 병상을 최소 수준으로 유지하고, 낮은 정신과 입원 진료비보다 더 낮은 수준의 치료만 하는 정신병원 병상만 많은 것이다.

‘싸구려 비지떡 수준’ 정신과 입원 치료는 입원한 정신과 환자에 큰 심리적 외상을 남긴다. 그 결과 우리나라 병원에서 퇴원한 정신과 환자의 자살률은 OECD 국가에 비해 2배가량 높다. 매년 정신과 퇴원 환자 약 1700명이 입원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외상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고, 이 중 약 절반은 싸구려 입원 치료로 인한 심리적 외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보니 퇴원 후에 상태가 나빠져도 다시 입원 치료받기를 꺼리게 된다.

그렇다고 건강보험 재정이 아껴지는 것도 아니다. 정신과 환자의 입원료는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의 정신과 환자 입원료보다 정신병원의 입원료가 1.5배 더 비싸다. 하루 입원료는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아 정신병원에 비해 3배 더 비싸지만, 정신병원의 입원 기간이 4~5배 더 길기 때문이다. 정신병원 입원환자의 입원료는 평균 약 463만원으로 입원 기간이 1주일 안팎인 미국 정신과 환자의 입원료와 비슷해진다. 하루 입원료는 미국에 비해 1/10에 불과하지만, 입원기간이 10배 이상 길어지니 결국 진료비가 비슷해지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정신과 환자 입원료를 너무 싸게 책정한 결과 급성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환자는 만성화되고 정신병원에 오래 입원하면서 돈은 돈대로 더 쓰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전 국민의 마음 건강을 챙기기 위한 국가적 서비스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사법입원제만으로는 국민의 정신건강으로 보장하지도 못하고 ‘묻지마 칼부림’을 해결할 수도 없다. 사법입원제와 함께 급성기 정신과 환자 입원 치료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편해야 한다. 대한민국 의료와 건강보험이 최고라고 허풍만 떨 것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선진국 수준인 적이 없었던 정신건강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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