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산 금성라디오
파이낸셜뉴스
2023.09.21 18:05
수정 : 2023.09.21 18:05기사원문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던 락희화학이 있었기에 제품의 틀만큼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순 우리 기술로 만든 첫 작품이 1959년 11월 15일 탄생했다. 최초의 국산 라디오인 'A-501'이다(동아일보 1959년 12월 16일자에 실린 광고·사진). 어느 지방신문은 이렇게 썼다. '금성사가 전국 상점에 일제히 라디오를 공급하였다. 금성사는 약 200명의 종업원이 현대적 시설로 된 공장에서 한 달에 3000대를 만들 수 있다. 라디오는 탁상용이며 케이스는 플라스틱으로 5가지 색상을 출시하였다.'
최초의 금성 라디오는 대여섯 대가 남아 있는데 한 대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2013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 라디오는 당시 36세의 젊은 엔지니어 김해수가 설계했다. 김해수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장인이라고 한다. 어렵사리 제품을 만들어냈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라디오는 사치품 취급을 받아 보급률이 매우 낮았다. 라디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더 비싼 외국산을 선호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 많았고 방송 내용도 보잘것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술해 보이던 첫 라디오를 출시한 지 3년 만인 1962년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할 만큼 국산 라디오의 품질은 좋아졌다. 라디오의 대성공으로 금성사는 가전업체의 선두주자로 성큼 나서 승승장구했다. 선풍기(1960), 냉장고(1965), 흑백 TV(1966), 창문형 룸에어컨(1968), 세탁기(1969), 컬러TV(1977) 등에 붙은 최초라는 수식어는 모두 금성사 차지였다. 사세가 커진 금성사는 1967년 본사를 을지로 한일을지빌딩으로 이전하면서 서울로 진출했다. 사업 구조도 가전, 통신, 전선 3개 사업부로 개편했다.
1971년에 락희화학에서 옮긴 4대 사장 박승찬(1926~1979)은 '금성 약진 3개년 계획'을 내걸고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금성사를 크게 키웠다.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경북 구미와 경남 창원에 공장을 세웠다. 금성사는 1995년 럭키금성그룹이 LG그룹으로 그룹명과 로고를 변경함에 따라 LG전자로 이름을 바꾸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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