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 모집의 이상과 현실 사이
파이낸셜뉴스
2024.01.09 17:59
수정 : 2024.01.09 17:59기사원문
교육부 무전공 모집 요구
인기학과로 쏠림 '불보듯'
기초학문의 고사 부채질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내년에는 모집정원의 20% 이상을, 2026학년도에는 25% 이상을 무전공으로 모집해야 한다.
무전공 모집의 취지는 학생들이 대학 입학 후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게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학생 선발방식은 학과별 모집과 모집단위 광역화 사이를 주기적으로 오갔다. 해방 후에는 학과별로 학생을 모집하다가 1970년대에 계열별 모집으로 바뀌었고, 1980년대에는 학과별 모집으로 회귀했다가 1990년대 중반에 학부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계열별 모집과 마찬가지로 학부제도 인기 학과와 비인기 학과 사이의 심각한 양극화와 전공 선택에서의 지나친 쏠림으로 인해 순수학문의 존속이 위협받게 되자 2008년 폐지되었고, 대학들은 2010학년도부터 줄줄이 학과별 모집으로 되돌아갔다.
쏠림현상의 '혜택'을 보는 학과는 너무 많은 학생이 몰려와서 제대로 교육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학생들이 외면하는 학과는 학생 부족으로 고사 위기가 심화될 것이 명백하다. 학생들로부터 외면받는 학과는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학과가 없어지고 학문 후속 세대가 사라지면 그 학문도 소멸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분야는 기초학문 분야일 것이다. 기초학문이 소멸하게 되면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어우러져 형성하고 있는 학문 생태계는 무너지게 된다. 쏠림현상의 폐해는 학문 생태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인재가 가장 큰 자원인 국가다.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 우수한 인재들이 골고루 진출해서 해당 분야를 발전시킬 때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시류에 따라 인기를 얻는 분야에만 인재가 몰리는 것은 그 자체로 비효율이며, 국가와 산업의 균형적 발전에도 저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정책입안자들이 무전공 모집이라는 이상주의에 치우쳐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교육이 위태로워지고 학문이 무너지며 결국 나라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대학의 자율성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데 우리나라 대학은 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재정지원을 구실로 끊임없이 대학의 일에 간섭해 왔지만, 그 결과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죽하면 수시로 교육부 폐지론이 나오겠는가. 이제 교육부는 대학의 일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 학생 모집과 관련해서도 각 대학이 교육이념과 인재상에 맞는 학생 모집방식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도 때로는 재정지원이라는 미끼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꿋꿋하게 소신과 철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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