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집과 소녀상
파이낸셜뉴스
2024.01.21 19:15
수정 : 2024.01.22 15:21기사원문
소녀상 희롱하는 외국인
안네의 집서 웃으며'V'자
우리들도 경각심 가져야
항일거리를 지나니 일본 총영사관도 보였다. 그 영사관 건물 지하철 입구 쪽엔 흰색 목도리를 두른 '평화의 소녀상'이 도로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소녀상 주변에서 낯선 언어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20대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 외국인 십여명이 낄낄거리며 V자를 하고 소녀상을 끌어안고, 입맞춤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심지어 민망한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어대는 것이 아닌가! 가방 하나 없는 차림새를 보니 관광객은 아니었다. 외국인 노동자 같았다. 화가 치밀어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필자는 그들에게 "우리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것은 예술 조각품이 아니다." 서툰 영어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한동안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난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겪었던 너무 부끄러운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누구나 필독서처럼 '안네의 일기'를 읽고 자랐다. 안네의 일기는 나치의 네덜란드 점령 기간 숨어 지내던 안네 가족의 삶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기는 안네의 13번째 생일, 안네와 그녀의 가족이 아버지 사무실 건물의 비밀 별관에 숨어들기 직전부터 시작된다. 2년이 넘도록 안네는 그들이 겪는 식량 부족,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긴장, 나치한테 발각될까 두려움에 떠는 모습들을 써내려갔다. 그런데 그런 공포와 불확실성 속에서 안네와 그녀의 가족들은 억압에 맞서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 일기는 회복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줬기에 전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일본이 저지른 '일본군위안부'의 상징인 소녀상 앞에서 V자 하고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에 화가 나듯,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증언한 열다섯살 안네 프랑크의 집 앞에서 어떻게 "김치"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단 말인가! 잊지 않으려고 세워둔 상징적 조형물에 개념 없이 장난쳤던 그 외국인처럼 우리도 여행 가서 남의 나라 아픔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모욕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저 사진 찍기 바빴을 뿐이라고? 변명이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한테 충분한 보상과 사과를 받지 못했다. 반면 독일은 달랐다. Vergangenheitsbewaltigung, 즉 "과거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끊임없이 사과하고 그 현장을 공개했다.
안네 프랑크와 일제강점기 위안부 할머니의 희생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은 단순한 고통의 상징물이나 이야기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미래 세대는 이러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승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기억을 먼 역사적 사건이 아닌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형성하는 살아있는 교훈으로 생생하게 간직해야 할 책임이 있다. 시간이 지났다고 자꾸 옅어지면 안 된다.
이가희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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