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같은 분" 경비원도 가족같이 지내는 금송힐스빌

      2024.02.13 17:19   수정 : 2024.02.13 17:1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저 사람은 O동 OOO호에 계신 분인데 나를 많이 도와줘. 빗자루 들고 와서 같이 쓸어주기도 해."
아파트 경비원 신선근씨(76)는 12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금송힐스빌경비실 안에서 밖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주민 또한 손을 슬쩍 흔들어 보였다.

신씨는 "밖에서 마주치면 서로 고개 숙여 인사하지만 경비실 안에선 제대로 안 보이니까 간단히 손인사를 한다"며 "누가 어디 사는 누군지 거의 다 안다.

나에게는 주민 한사람 한사람이 아버지 같고 아들 같다"고 말했다.

경비원-입주민 참여하는 단톡방
금송힐스빌은 88가구 소규모 단지다. 3개 동이 측면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현재 근무하는 경비원은 신씨를 포함해 단 2명 뿐이다. 가구 수는 적지만 이곳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래서 고령층이 근무하기는 쉽지 않은 공간이다. 이따금씩 신씨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다. 경비원과 입주민이 함께 하는 단체 카카오톡 방이다. 8년 전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신씨는 "주민들의 여러 의견이 나올 때도 있지만 입주민들로부터 업무상 배려를 많이 받고 있다"면서 "내가 각 동을 오르내리지 않도록 입주민들이 각 호수의 수도 및 전기 사용량을 정기적으로 여기 공유해준다"고 말했다.

김개환 주민자치회장(63)은 "경비원 혼자 하면 반나절 이상 걸리는 일이다. 주민들이 조금씩만 돕기로 아이디어를 냈다"면서 "그 대신 경비원은 환경미화같은 다른 일에 더 힘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야간 근무를 하지 않는다. 그가 일하는 시간은 오전 7시~오후 7시까지다. 2시간짜리 휴무 시간이 2번 주어지기 때문에 실제 일하는 시간은 8시간이다. 격일제로 근무하며 120여만원을 받고 있다. 보통 경비원들이 아침에 출근해 경비실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다른 경비원과 교대하며 퇴근하는 것과는 다른 일상이다. 김 회장은 "이곳 주민들은 정년 퇴임해 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경비원 관리비가 높아지면 부담이 된다"며 "아파트 자치회에서 300만원 들여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고 밤 늦은 시간에는 자율 경비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벌이가 줄어드는 것을 신씨도 이해해주면서 주민들 또한 배려가 몸에 익었다.

"단기 계약은 사라져"
신씨가 금송힐스빌에 온지는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지난 2012년 4월부터 이곳을 지켰다. 앞서 일했던 경비원들 가운데는 짧게는 1년도 안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3개월 단기의 경비직은 입주민 입장에서 일장 일단이 있다고 한다. 1년 이상 근무하지 않으니 입주민 입장에선 퇴직금을 줄 의무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 자주 바뀌다 보니 입주민들도 장기 근속하는 사람들을 원했다. 퇴직금 부담보다는 숙련된 관리 인력이 절실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신씨와 같이 오래도록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계약은 1년 단위로 하는데 통상적으로 매년 계약을 하고 있다. 신씨는 "나나 입주민측이나 언제까지 일한다는 얘기도 따로 하지 않는다"며 "자치회장이 아주 일처리를 잘한다. 서로 믿고 일해주니 나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관리용역을 위탁하지 않고 주민 자치회에서 직접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1500세대나 그 이상 세대가 많은 큰 아파트는 위탁업체에 맡겨서 관리가 용이한데 88세대밖에 안 되는 저희는 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자율적으로 직접 운영한다"며 "관리·위탁업체에서 용역을 관리하면 아무래도 아파트 주민하고 부딪치면 재계약이 안된다는 점을 이용해 주민들이 개인적인 일을 시킨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이 수술비 보태주기도"
신씨는 3개월 전 다리를 수술할 당시 주민들이 비용을 보태주었다고 한다. 신씨가 치료 받는 동안엔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일을 나눠 했다.

신씨는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늦게 나올 때도 있고 못 나올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업무를 해주기도 한다"며 "'내가 해야 하는데 어느 분이 나와서 수고해주시는구나'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얼마나 고맙겠나. 서로가 웃으면서 도우니까 맘도 편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주민 김창용씨(68)는 "이 나이에 정년퇴임하고 가끔 일하는 게 큰일도 아니다. 그냥 내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했을뿐"이라며 "그 분도 우리 식구니까 못 나올 때 내가 일을 조금 더 하면 된다.
다같은 식군데 다들 사는 게 힘들잖나"라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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