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마을 '최고 인싸' 24살 이장님의 '완도 라이프'
뉴스1
2024.02.24 07:17
수정 : 2024.02.24 07:17기사원문
(완도=뉴스1) 박지현 기자 = "아이고 이장님 오셨어? 나 핸드폰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서 이것 좀 없애줘."
경로당에 들어서자 신발을 벗기도 전 여기저기서 어르신들의 러브콜을 받기 바쁜 김유솔 씨(26·여).
전남 완도군 용암마을 이장인 유솔 씨는 전남 최연소 젊은 여자 이장님이다.
자신의 사진관 사업도 쉽지 않은데 동네 대소사를 챙기는 이장까지 맡아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이날만 해도 가스연결과 같은 생활 민원부터 어르신들에겐 어려운 스마트폰 사용법까지 동네 해결사로 톡톡히 자리매김한 모습이었다.
용암마을에는 현재 87가구 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에 사는 20대는 김 이장을 포함해 2명뿐이다. 10대 5명, 30대 2명 외에 나머지 주민은 모두 60~70대다.
유솔 씨는 3년 전 전임 마을이장의 제안으로 덥석 이장 바통을 이어받았다. 24살 최연소 이장 타이틀이 탐났던 이유가 컸다.
그는 "나라고 못 할게 뭐가 있나. 젊고 봉사하는 일이니 시켜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취임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로 인해 여러 걱정 섞인 시선들이 쏟아졌다. 우려 속에서도 사진사라는 직업을 살려 마을 행사에서 사진을 찍어 배포하는 등 어르신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동분서주한 끝에 '몰표'로 당선됐다.
취임 첫 해는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가로등, 마을 진입로 공사, 배수 등 동네 생활민원과 관련한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다. 마을 주민끼리 의견이 달라 갈등이 생기면 중재에도 나서야 했다.
김 이장은 "이장 일은 누가 매뉴얼을 주고 알려주는 게 아니었다. 나이가 어려 중재에 나서야 할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며 "3년차가 되니 이제는 동네 어르신들께 중재를 부탁하는 노하우도 생겼다"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동네 노인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할 때 피곤이 눈녹듯 사라진다고 했다.
이장으로 뽑힌 후 가장 달라진 점으로 '몸무게'를 꼽았다. 동네 어르신들이 김 이장이 지나갈 때면 입에 맛있는 간식을 꼭 넣어주면서다.
지금은 용암마을 최고 '인싸'로 등극했지만 완도가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완도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등학교 졸업 직후 디자인계열로의 취업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한번 고향에 내려올때면 6~7시간 가까이 걸리는 탓에 마음에서도 멀어졌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면 실패로 보는 시선에 귀향을 망설이기도 했다.
팍팍한 서울살이 도중 2년 만에 내려와 바라본 완도의 푸른 바다는 유솔 씨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완도에는 인프라가 없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짙었다"며 "그런데 반대로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이 전환됐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사진관 창업'으로 이어졌다. 서울에는 널려있는 게 사진관이지만 완도에는 유일했기 때문이다.
지역 소멸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분명 존재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실제 완도에서 한달살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완도에 정착한 청년들이 생겼다. 김 이장의 사례를 보고 친구들도 완도에 내려와 향수공방과 같은 가게를 창업하기도 했다.
청년들이 완도에서의 삶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동네를 더 잘 가꾸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는 어설프게 도시를 따라하기보다는 지역 고유의 콘텐츠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화관이나 미술관 같은 문화예술 공간이 부족해도 직접 전시회를 꾸려 작품을 출품하며 문화를 선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솔 씨는 "지자체에서는 쓸만한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정주여건을 마련해준다면 더 많은 청년들이 와서 정착할 것"이라며 "완도를 멋진 공간으로 만들어서 멋쟁이들의 수장이 되겠다. 그 날이 올 때까지 발 벗고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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