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상해치사 사건…대법 '심신상실' 인정해 무죄

뉴시스       2024.04.05 06:02   수정 : 2024.04.05 06:02기사원문
입원 중 병실 외출 저지당한 70대 남성 자고 있던 환자 소화기로 내려쳐 사망 대법 "원심의 심신장애 법리 오해 없다"

[서울=뉴시스] 알코올성 치매를 앓는 등 심신미약 상태에서 병실을 나가려다 간호조무사에게 저지당하자, 자고 있던 환자의 머리를 소화기로 내려쳐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 남성의 무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뉴시스DB. 2024.04.05.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전재훈 기자 = 알코올성 치매를 앓는 등 심신미약 상태에서 병실을 나가려다 간호조무사에게 저지당하자, 자고 있던 환자의 머리를 소화기로 내려쳐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 남성의 무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상해치사 혐의를 받는 박모(77)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모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은 "원심의 판단에 심신장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치료감호 청구에 대해서도 "필요성 및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지난 2021년 8월7일 오전 3시30분께 병실을 나가려다 간호조무사에게 저지당하자, 철제 소화기를 집어 들어 같은 병실에서 자고 있던 남성 A(81)씨의 얼굴과 머리를 내려쳐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외상성 다발성 두개골 골절 등 상해를 입었고, 사흘 뒤 사망했다.

박씨 측은 "중증 치매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며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박씨는 지난 2004년 12월부터 한 병원에서 '알코올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의존성 증후군)'로 치료를 받아왔다.

2008년부터는 알코올성 치매 진단을 받고 2020년 3월까지 6회에 걸쳐 입원치료를 받았다. 특히 2018년에는 외막성 경막하 출혈로 입원치료를 받았고, 뇌수술을 받은 뒤 치매 증상은 더 심해진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2021년 9월 박씨를 20여일 입원시켜 정신 감정을 진행한 의사는, 박씨의 치매 및 인지기능 장애 정도가 '기억력, 판단력 등 전반적인 인지기능 저하로 일상생활 유지에 있어 주변인의 도움이 상당히 필요한 중증의 인지장애'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박씨가 일상생활의 판단이나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봤다.

다른 의료 감정 결과에서도 박씨가 범행에 이르기 전부터 우울, 공격성, 탈억제 등 증상과 일시적 혼돈 상태인 섬망을 겪었다는 판단이 나왔다. 범행 당시에도 의사능력 수준이 매우 낮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박씨는 범행 이후 경찰의 신문 과정에서 이름, 거주지, 주민등록번호는 답변했으나, 범행 동기나 경위와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등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1심을 맡은 부산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이진재)는 박씨의 심신상실 상태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알코올성 치매로 인해 인지기능이 현저히 저하돼,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상실된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지난해 4월13일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재범 위험성이 있다며 청구한 치료감호에 대해선, 병원에 입원해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점, 공격적인 성향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료진 소견이 있는 점, 박씨가 식사 및 약물 관리 등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워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시설에 강제로 수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찰은 박씨가 심신상실이 아닌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아울러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치료감호 시설 입소가 필요하다고 재차 주장했다.

형법을 보면 심신상실 상태는 '사물의 선악과 시비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거나, 사물을 변별한 바에 따라 의지를 정해 자기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심신미약은 심신상실처럼 구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결여된 정도는 아니지만, 미약한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2심 법원인 부산고법 형사2-1부(부장검사 최환)는 박씨가 심신상실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 재차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씨의 치매 증세가 심각해 한정치산자가 아닌 금치산자로 판단된다는 한 병원 소견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병원은 '박씨가 범행 당시 중증 치매로 인해 망상에 사로잡혀 인지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행동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망상이 아니고서는 박씨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 등의 소견을 내놨다.

재판부는 "박씨가 범행과 같은 잔인한 방법으로 A씨를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그의 얼굴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격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며 "박씨는 법원에 출석해 범행 경위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은 차치하고, 의미 있는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치료감호 청구도 1심과 같은 이유로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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