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 바꾸지 못하면
파이낸셜뉴스
2025.01.06 19:30
수정 : 2025.01.06 20:56기사원문
그래서 한창 싸움질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이미 외국 유학에 로스쿨 등 보내서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시킨 당신들의 자녀들, 부동산, 주식, 코인 등에 당신들이 열심히 투자(?)해서 마련한 자산으로 미래가 보장된 당신들의 자녀들 빼고 나머지 대다수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갈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이른바 진보, 보수 진영을 망라한 질문이다.
고집불통 꼰대든 현란한 언어와 혹하게 만드는 정보로써 대중을 뒤흔드는 진보의 아이콘 같은 아저씨도 알고 보면 수십억원 자산가들이다. 차별받는 청년과 여성을 위해 평생 헌신하고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여러분들 중 수십억원 자산가 대열에 속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공무원에게 사명감은 이미 두려운 개념이 되었다. 사명감 자체는 정권과 관계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소신과 노력이 정권의 시기에 따라 재단되어 판단받는다. 내가 열심히 일한 시기가 문재인 정권과 겹치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조용히 지내야 한다. 열심히 일한 내가 나중에 받을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지시사항을 몰래 녹취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어떤 정책이 연속성을 갖고서 20~30년 뒤에 우리 아이들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국정 감사하며 의정 활동하는 국회의원 몇 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 고함 지르고 윽박질러서 일단 사람들에게 인상을 각인시키는 국회의원이 다음 공천도 받고 재선·삼선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세상이 되었다. 김영삼, 김대중 보스를 쫓아다니더라도 이른바 '싸움의 룰'이 있었는데, 그나마 그 룰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 대중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간다. 6~7%의 득표율이 국회의원 60~70명의 차이로 나타나는 극단적인 승자독식 정치체제에서 다양해진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정당을 찾기 어렵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 87년체제의 기득권들은 '보수 대 진보'라는 민중의 아편을 만들어 놓았다. 누가 진짜 진보이고 보수인가?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가족끼리 친구끼리 직장동료들끼리 싸움이 나는 세상이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를 피하고 선거 때가 되면 "나는 진보다, 나는 보수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투표한다. 진보와 보수로서 표현하는 기득권에 투표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진짜 진보정치도 보수정치도 찾아보기 어려운 싸움판만 펼쳐지고 있다.
당장 권력을 잡아서 나눠 가질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려라. 탄핵을 면하고 어떻게든 정권만 유지하면 된다는 허망된 꿈도 포기하라. 역사에 저지르는 죄다. 당신들의 자녀들 말고 무수한 젊은이들에게 짓는 죄다.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 입법독재도 가능한 국회, 정책의 연속성, 유권자의 다양성,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없도록 하는 40년 된 87년체제를 바꾸지 못하면 우리에게 남은 길은 단 하나다. 대한민국의 침몰이다. 중고등학교 때 역사 교과서를 펼쳐 보시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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