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브로큰' 단 99분, 수컷의 본능적 질주
파이낸셜뉴스
2025.01.24 11:11
수정 : 2025.01.26 15:32기사원문
복수극에 공감대 생기지 않아..2월 5일 개봉
[파이낸셜뉴스] 배우 하정우가 주연한 영화 ‘브로큰’은 수컷 냄새나는 하드보일드 액션영화가 장기인 제작사 사나이픽쳐스의 신작이다.
사나이픽쳐스는 ‘신세계’ ‘남자가 사랑할 때’ ‘아수라’ ‘공작’ ‘돈’ ‘헌트’ ‘리볼버’ 등을 제작했다.
‘브로큰’도 이 제작사 특유의 남성적 색채가 진한 범죄물이다.
하나뿐인 동생 석태를 잃은 전직 조폭 출신 일용직 남자 민태(하정우)가 복수를 위해 질주하는 분노의 추적극이다.
영화는 유력 용의자인 동생의 사라진 여자 문영(유다인)을 뒤쫓는 과정이 주된 줄거리다.
동생 죽음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민태가 한때 몸담았고 동생이 소속돼 있는 조직 창모파부터 그 반대파,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 석태의 죽음이 담긴 이야기를 쓴 소설가 호령(김남길), 문영과 함께 호령의 문화센터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 그리고 문영의 아는 언니까지 다양한 인물이 줄줄이 나온다.
도대체 사라진 여자는 어디에 있고, 그날 밤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을 품고, 민태의 추적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많은 캐릭터들이 오밀조밀하게 엮여 있는데 각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익숙한 듯 새롭고, 아예 새로운 조단역 배우의 얼굴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하정우가 연기한 민태 캐릭터도 영화적으론 매력적이다. 하정우의 연기 역시 돋보인다.
민태는 조직을 떠난 뒤에도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남자다. 하도 싸움을 잘해 주먹도 거침없다. 두려움이라곤 찾아보기 힘들고, 자기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주먹이 나간다.
'쇠 파이프'를 든 민태의 액션은 그의 묵직한 표정과 성격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장르적 쾌감에 주력한 영화라 일단 이 남자의 복수극에 탑승하면 끝까지 보게 하는 힘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남자의 복수극이 어떤 감정적 공감을 자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한 남자의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질주만 있을 뿐이다.
특히 민태의 죽은 동생은 연민을 자아내는 불쌍한 인물도 아니다. 한 여자에게는 그저 벗어나고 싶은 지옥일 뿐이다. 조직 입장에선 그냥 사고치기 일쑤인 성가신 조직원이다.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는 오직 피붙이 형뿐이다.
민태로선 말썽꾸러기 동생을 뒤치다꺼리하는 게 그의 존재 이유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범죄 조직에 동생을 이끈 이는 바로 민태였다. 어쩌면 이것은 약육강식 밑바닥 인생에서 살아온, 그 남자만의 책임 다하기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가장의 무게가 무겁다고 느끼는 남성 관객들은 그의 여정이 공감될까.
드라마적으론 김남길이 연기한 소설가 호령의 역할이 애매하다는 점도 아쉽다. 호령의 존재로 미스터리함이 가해지나 일시적일 뿐이며,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마초적 세계에서 여성의 팔자란 그야말로 사납기 일쑤다. 문영에겐 석태의 죽음은 자유였는데, 그의 형 민태의 추격으로 또다시 지옥이 펼쳐진다. 극중 누군가가 말한다. 가만히 놔두면 잘 살 애를 찾으러 다닌다고. 맞는 말이다.
이야기의 곁가지를 과감히 쳐냈는지, 러닝타임이 99분에 불과하다.
영화 '양치기들'로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수상한 김진황 감독이 연출했다. 2월 5일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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