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회복
파이낸셜뉴스
2025.04.08 18:08
수정 : 2025.04.08 18:08기사원문
마을버스에 탔다. 이어폰을 끼고 카카오톡을 확인하는데 평소보다 열 배는 많은 카톡이 와 있었다. 너무도 현실적이지 않은 메시지와 짧은 영상들. 특히 헬기를 탄 군인이 국회의사당에 내리는 장면을 보면서 이게 정말 현실인가 하는 인지부조화가 생겼다. 그 와중에 포고령 3호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조항을 보자 '설마 이대로 실업자가 되는 건가'라는 걱정도 들었다. 자정이 넘어 예정됐던 공장 투어가 취소됐다는 메시지가 왔던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순환하는 마을버스에 그대로 탄 채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둑한 거리에서 허리가 휜 한 할머니가 리어카에 박스를 싣고 계셨다. 계엄이 터진 상황도 모르고 박스를 줍는 할머니가 짠해서 스마트폰으로 할머니의 사진을 몰래 찍었다. 눈물이 찔끔 났다. 다행히 집에 도착해서 단체메시지 창을 끝까지 봤고, 그제야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새벽에 계엄령이 해제됐다는 걸 알게 됐다. 깊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계엄과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시장에서 치킨을 파는 자영업자도 타격을 받았다. 고된 업무를 마치고 치킨에 맥주 한 잔을 하던 직장인들의 일상도 깨진 탓이리라. 일상이란 것은 늘 거기에 있어줬기 때문에 잃어버린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후 치킨집 사장님도, 평범한 직장인도 일상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점심을 먹고 여의도공원을 산책하는데 작년과 마찬가지로 하얀 벚꽃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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