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전 "무장공비 왔다" 신고한 나무꾼, 故 김신조 마지막 배웅
연합뉴스
2025.04.11 06:01
수정 : 2025.04.11 06:01기사원문
청와대 향하던 공비들과 산에서 마주쳐…고인 귀순 뒤 끈끈한 우정
57년 전 "무장공비 왔다" 신고한 나무꾼, 故 김신조 마지막 배웅
청와대 향하던 공비들과 산에서 마주쳐…고인 귀순 뒤 끈끈한 우정
10일 오후 '청와대 습격사건'의 북한 무장 공비 출신 고(故) 김신조 목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영등포구 장례식장. 고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찾아왔다는 백발의 신사에게 조문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57년 전 그날을 떠올리던 우성제(77)씨가 잠시 눈을 감았다.
우씨는 고인을 포함한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부대 소속 공작원 31명의 침투 사실을 경찰에 처음 신고한 '나무꾼 4형제' 중 막내다.
당시 스무살이던 우씨가 경기 파주 삼봉산에서 무장 공비들에게 붙잡힌 건 1968년 1월 19일이었다.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목표로 북한 개성에서 출발한 지 이틀만이었다.
오후 1시께 우씨가 갈퀴로 낙엽을 모으는데 별안간 8촌 형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산길을 20∼30m 올라가니 군인 네 명과 이야기하는 형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가슴이 덜컹하면서 '아이고, 죽었구나' 싶더라고요. 보자마자 무장 공비인 걸 알아챘어요. 중위, 하사, 사병으로 계급이 제각각인데 AK 소총과 권총, 수류탄을 하나씩 차고 무장 상태가 똑같았거든요."
우씨는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추운 날씨에 수고하신다"며 말을 건넸다. 공작원들은 우씨 형제를 쭉 지켜보고 있었는지 다짜고짜 "분명히 네 명이 올라왔는데 나머지 두 명은 어디 갔느냐"고 추궁했다.
이들은 "할 이야기가 있으니 산꼭대기에 있는 본부로 올라가자"고 우씨 형제를 채근했다. "나무를 해서 저녁에 가져다 팔아야 양식을 사 먹는다"며 버텼으나 들고 있던 낫까지 뺏기고 끌려갔다.
공작원들은 우씨 형제를 앉혀놓고 이름과 가족관계, 파출소 위치 등을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지 솔직히 이야기하라"는 취조에 우씨는 한술 더 떠 "훈련 나온 거 같은데 우리 집에 가서 따뜻한 국이나 먹고 가시라"고 답했다. 그 사이 우씨의 6촌 형 두 명도 잡혀 왔다.
"동무들…." 옥신각신한 끝에 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별안간 억센 북한 사투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북조선에서 넘어온 지하 혁명당이오. 일을 마치고 북으로 돌아가고 있소."
공포감에 아찔했지만, 우씨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버텼어요. '이북은 어버이 수령의 햇살을 받아 온 인민이 골고루 잘 살고 대학도 무료로 보내준다'더군요. '거기서 살면 좋겠다. 여기서는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겨우 먹고산다'고 계속 이야기했죠."
저녁이 돼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공작원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와 공산당 입당 원서를 건넸다. 우씨 형제는 허겁지겁 서명했다. 우씨는 "목숨이 날아갈 위기인데 100장인들 못 써 주겠나"라고 웃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들을 딱하게 보던 공작원들이 주섬주섬 짐을 풀더니 보상이라며 일본제 손목시계를 주고는 돌려보냈다. "6개월 뒤에 다시 올 테니 그때 만나자는 증표"라고 했다. 우씨의 얼굴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제대로 먹지 못해서 말랐다"며 혀를 찼다.
"신고하면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협박에도 우씨 형제는 그 길로 파출소에 들러 신고했으나 경찰은 한동안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군경이 소탕 작전에 들어가 차단선을 설치하는 것을 본 공작원들은 우씨 형제의 신고 사실을 알아챘다.
이들은 시속 10㎞로 행군해 1월 21일 밤 청와대 500m 코앞인 자하문고개까지 침투했으나 군경과의 교전 끝에 김 목사 홀로 생포됐다.
김 목사의 딸(53)은 "아버지께서 수류탄으로 자폭하려는 순간 '나는 누구인가' 생각에 살고 싶다는 본능이 들며 두 손을 드셨다더라"며 "평생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3천여회의 안보 강연을 다니셨다"고 울먹였다.
이후 귀순한 김 목사와 우씨는 최근까지 여러 차례 왕래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우씨는 무장 공비를 신고한 공로로 경찰관이 돼 2005년 퇴직했다.
우씨는 김 목사가 1997년 서울성락교회 목사 안수를 받던 자리에도 참석해 누구보다 아낌없는 축하를 보냈다. 김 목사는 생전 여러 차례 "우씨 형제가 대한민국을 살렸다"며 치켜세웠다.
김 목사와 호형호제하며 지낸 우씨는 "지난해 여름 치매를 앓고 계신 중에도 동생을 알아보고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우씨는 조문 후 김 목사 아내의 손을 맞잡고 한동안 놓지 못했다. 기념사진을 찍는 우씨와 유족들 뒤로 영정사진 속 김 목사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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