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즈앤로지스, 밴드붐 세대통합…추억은 현재진행형 부정합이네
뉴시스
2025.05.02 05:18
수정 : 2025.05.02 05:18기사원문
건스앤로지스, 1일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 내한공연 현장 짱짱한 보컬의 액슬 로즈·신들린 듯 슬래시·섹시한 매케이건 그리고 새로 합류한 날렵한 드러머 아이작 카펜터 로즈 중심의 2009년 첫 내한공연 이후 16년 만 2016년 재결성 이후 멤버들 전성기 시절 재현
1일 오후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2025 건즈 앤 로지스 월드투어 인 코리아' 현장. 애초 공연 시작 시간은 오후 7시였는데, 어느덧 38분이 지났다.
하지만 미국의 전설적인 하드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건스 앤 로지스)' 멤버들은 무대 위로 오르지 않았다.
오후 7시38분 오프닝 영상이 마침내 상영되고 오후 7시40분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첫 곡은 무려 이들의 대표곡 '웰컴 투 더 정글(Welcome to the Jungle)'이었다. '노벰버 레인' 아니 '메이 레인', 비가 내려서 기온이 낮아진 게 다행이었다. 무대 위는 물론 2만여 팬들이 모인 현장이 초반부터 뜨거웠기 때문이다.
약 1년 반 만에 재개된 투어였는데 이전 투어 세트리스트와 확연히 달랐다. 그 만큼 벼르고 나온 흔적이 역력했다.
'배드 옵세션(bad obsession)'으로 바로 이어졌는데 예순이 넘은 로즈의 보컬은 여전히 짱짱했다. 스탠딩 마이크를 움직이는 모습이 예전처럼 날렵하지는 않았지만, 노장의 투혼은 근사했다. 16년 전 딱히 큰 이유 없이 대기실에서 나오지 않아 공연을 지연시킨 악동 같은 면모는 온데간데 없고, 얼굴은 한결 순해져 있었다. "그리웠다"는 멘트는 외침이 아닌 고백이었다.
'미스터 브라운스톤(Mr. Brownstone)', '차이니즈 데모크라시(Chinese Democracy)'에 이어 초반 화음이 돋보이는 '리브 앤 렛 다이(Live and Let Die)'를 들려줄 때 로즈의 고음은 포물선을 그리듯 부드러웠다.
그르렁거리던 슬래시의 기타는 자신과 맥케이건이 주축이 됐던 밴드 '벨벳 리볼버(Velvet Revolver)'의 '슬리더(Slither)'부터가 본격적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퍼햅스' '이스트레인지드(estranged)'를 거쳐 '더블 토킹 자이브(Double Talkin' Jive)'에서 슬래시의 기타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손이 곱는 날씨에도, 화려한 기교로 신들린 듯 연주하는 그는 기타 전천후였다. 슬래시의 독무대 때 잠시 숨을 돌리고 나온 로즈는 '코마'에서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의 지원 사격을 받아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소리(sorry)' 무대에선 한국 팬들이 건즈앤로지스 멤버들에게 선물을 선사했다. 스마트폰 플래시를 일제히 밝혀 지상의 별을 만든 것이다. 로즈는 "지금 정말 아름답다. 한국이 우리에게 선물을 줬다"면서 뭉클해했다. '베터'를 거쳐 미국 포크 록 대부 밥 딜런의 명곡을 이들 식으로 재해석한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때도 다시 한 번 스마트폰 플래시 이벤트와 함께 조용한 떼창이 흘렀다.
바로 이어서 건즈앤로지스의 대표곡 '스위트 차일드 오 마인(Sweet Child O' Mine)'이 나오자 공연장은 한 여름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했다. 오전에 내린 비로 인해 땅이 다소 질퍽거렸지만, 상관 없다는 듯 뛰었다.
그리고 드디어 '노벰버 레인'. 긴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늦봄에 근사하게 어울리는 촉촉한 선율에 야외 공연장 펜스 넘어로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위치타 라인맨' '페이션스'에 이어 '나이트레인'에서 다시 광적인 현상이 빚어졌다. 그렇게 약 2시간30분은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 시티'로 마무리됐다.
이번 인천 투어부터 정식으로 합류한 드러머 아이작 카펜터(Isaac Carpenter)의 활약상도 이날 건즈 앤 로지스 팬들 사이에선 대단히 화제였다. 섹시함으로 중무장한 매케이건의 밴드 '로디드(Loaded)'의 멤버이자 애덤 램버트 라이브 투어 밴드 멤버이기도 한 그는 쌀쌀한 날씨에도 상의를 벗은 채 날렵한 근육을 자랑하며 리드미컬한 연주를 들려줬다. 미국의 권위 있는 대중음악 매거진 '롤링스톤'이 인천 공연을 조명하며 카펜터의 합류를 주요 뉴스로 다룰 정도였다.
특히 최근 국내에서 불고 있는 밴드 열풍의 화룡점정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기도 했다. 몇몇 젊은 밴드들의 팬덤으로 밴드 열풍이 조성된 게 아니라 우리 음악 신에선 밴드에 대한 추억과 함께 열망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중장년층 남성 관객이 물론 주를 이뤘지만, 건즈앤로지스의 전성기 시절을 영상으로만 접한 젊은 여성 관객들도 상당수였다. 특히 아버지와 딸, 임신한 상태로 자녀, 남편과 함께 온 여성 등 다양한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많았다는 것도 이번 건즈앤로지스 객석의 특징이었다. 그렇게 밴드붐의 세대 통합이 이뤄졌다. 오랜만에 재개한 투어인 만큼 외국인들도 상당수였다. 로즈의 한 때 상징인 반다나(bandana)를 다양한 형태로 착용한, 밴드 티셔츠를 입은 관객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40년 간 쌓인 음악에 대한 추억 역사는 부정합이라는 것도 인식하게 했다. 퇴적이 중단된 뒤 다시 퇴적이 진행돼 시간의 공백이 있는 부정합과 같다. 음악이 퇴적되다가 삶에 쫓겨 어느 순간 그것이 뚝 끊긴 듯 했지만, 돌이켜보면 부정합처럼 음악은 쌓여 있었다. 추억은 납작하게 시간의 순서대로만 누워 있지 않다. 과거의 영광과 상처, 기쁨과 슬픔이 돌연 파고 들어오는 가운데 그것이 현재진행형임을 느낄 때 속절없이 열광하고 무너진다. 이날 건즈앤로지스 공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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