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내려놓고 뜨개질하는 Z세대… 新도파민에 빠지다
파이낸셜뉴스
2025.05.21 18:32
수정 : 2025.05.21 19:53기사원문
뜨개용품 팝업 예상 초월한 흥행
다꾸·필카 등 아날로그 취미 열풍
손품 같은 노력의 결과물 '짜릿'
세대 연결해주는 사다리 역할도
전문가 "자신만의 특기로 발전
창업 밑거름 될 수 있어 긍정적"
지난 15일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1층에서 진행된 뜨개 용품 상점 '바늘이야기'의 팝업스토어는 오전 10시 30분 오픈과 동시에 '뜨개인'으로 북적였다. 현장에서 만난 강린희씨(24)는 "당장은 즐겁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피로감이 수반되는 미디어 콘텐츠로부터 떨어져 뜨개질을 하니 안정감이 느껴진다"며 미소 지었다. 팝업스토어를 찾은 이들은 뜨개 실과 편물로 꾸민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가 하면, 매장 내에 비치된 뜨개용품으로 '스탠딩 뜨개질'을 선보이기도 했다.
20대들 사이에서 뜨개질과 '다이어리 꾸미기(다꾸)', 필름 카메라(필카)를 활용한 사진 촬영 등 아날로그 취미가 부상하고 있다. 즉각적인 쾌락에 중독돼 자극적인 콘텐츠를 계속해서 찾아다니는 대신, 디지털 환경과 동떨어진 '반 도파민'형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같은 흐름이 관련 시장 활성화 및 세대 화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1일 본지가 쇼핑 플랫폼 무신사에 요청해 받은 '최근 3개월 내 검색량 데이터 및 카테고리별 거래액' 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뜨개질' 키워드는 전년 동기 대비 226.5% 증가했으며 '다꾸'와 '필름카메라' 키워드는 같은 기간 각각 143.8%, 54.2% 늘었다.
뜨개질 SNS를 운영하는 이예진씨(24)는 아날로그 취미 흥행의 원인으로 '나만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아날로그 취미가 '나만의 것'을 갖고 싶어 하는 20대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 같다"며 "뜨개질로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필름카메라로 내가 보는 그 순간을 찍어내고, 다이어리로 내 하루를 꾸미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최근 3개월 간 무신사가 운영하는 셀렉트숍 29CM에서 다이어리·플래너 거래액은 전년 대비 151%, 노트·수첩은 131%, 필기도구는 84% 급증했다. 무신사 내 즉석 카메라와 스티커 거래액은 각각 74.1%, 72.6% 늘었다.
더현대 서울 지하 2층에 위치한 문구점 직원 이다인씨(29)는 "문구점을 찾는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20대 고객이 가장 많다"며 "새롭게 나오는 스티커나 다꾸용품을 구매하면서 '그들만의 도파민'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反'도파민이 '新'도파민으로
전문가들은 20대들의 아날로그 취미를 통한 '반 도파민' 열풍이 새로운 형태의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워낙 SNS나 인터넷 등을 많이 접하다 보니 이에 대한 피로감과 지루함도 자주 느낀다"며 "디지털 세상이 너무 익숙해지다 보면 결국 약간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자신의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가는 '복고풍' 취미가 새롭게 와닿는 것"이라고 짚었다. 곽 교수는 "이 같은 흐름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자신만의 기술로 발전하고, 창업이나 소비 흐름 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29CM가 젊은 층의 아날로그 트렌드를 포착해 지난달 '인벤타리오: 2025 문구 페어'를 개최한 것이 대표적 예시다. 서울 코엑스에서 닷새 동안 개최된 행사에는 2만5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69개 라이프스타일·문구 브랜드 중 75%가 매출 억대 이하의 중소 브랜드였다. 뜨개 완성품을 인터넷에 공유할 때, 어떤 도안과 어떤 실로 만들었는지 정보를 공유하는 '뜨개 소모임'과 '뜨개 인플루언서'도 생겨나고 있다. 이 중 유명 뜨개 유튜버 '김대리'의 구독자 수는 44만4000명에 달한다.
'반 도파민' 열풍이 세대 통합 요소로 작용하는 사례도 있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지 2년 된 구본규씨(24)는 "부모님의 필름카메라를 발견해 사진을 찍는 취미가 생겼다"며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폰으로도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지만 한정적인 필름으로 담아내는 사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을지로4가역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A 필름 현상소 점주 홍의수씨(54)는 "부모님이 사용하던 필름 카메라를 들고 오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고객이 많다. 필름 카메라가 부모와 자식 세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이현정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