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사회의 기준을 앞서 낮춘다

파이낸셜뉴스       2025.07.23 10:29   수정 : 2025.07.23 10:29기사원문
정치가 기준을 저버릴 때 생기는 문제들
사회적 수준을 앞장서서 낮추는 한국정치



군대에서 ‘집합’을 시킬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대답은 명확하다. 기준을 정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기준점에 세우고 나머지 인원들이 그 기준을 중심으로 정렬한다.

이것이 조직의 질서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기준이 있어야 방향이 생기고, 행동이 정당성을 얻으며, 공동체는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이는 단지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장면에서 기준은 중요하다. 고대 진시황제가 도량형을 통일한 것도 결국 하나의 기준을 정립함으로써 제국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시도였다. 법과 헌법도 마찬가지다. 국가 공동체가 합의한 기준이다. 하지만 이 기준이 무너지면 질서는 혼란으로, 신뢰는 불신으로 변질된다.

기준을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사람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기준’을 가장 먼저 무시하는 집단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은 스스로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 내 편이면 문제없고, 남의 편이면 사소한 것도 문제 삼는 이중잣대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피로하다. 과거에는 정치적 신념이나 정책에 대한 대립이 논쟁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아예 기준 자체를 정치적으로 조작한다. 법과 도덕, 공정과 정의, 심지어 ‘상식’이라는 말조차 정파적으로 이용된다.

그 결과, 국민들은 더 이상 정치인들의 말이나 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 자체를 ‘속물들의 놀이터’로 취급하게 되었다. 신뢰의 기반이 되는 기준이 자의적으로 흔들릴 때, 국민은 판단의 기준을 잃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 또는 혐오로 빠지게 된다. 정치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셈이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보며


최근 있었던 인사청문회 사례는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논문 표절, 제자 논문 가로채기, 자녀의 불법 유학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다. 과연 교육부 수장의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대학 총장 시절의 리더십 문제와 전문성 부족 논란까지 겹치면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기준을 명백히 밑도는 인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지명철회가 되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역시 보좌진에 대한 갑질, 그리고 이에 대한 거짓 해명 논란 등으로 자격 논란에 휘말렸다. 이 역시 정치적 공세로만 치부하기엔 내용이 지나치게 무겁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인물들을 무리하게 임명하려는 시도조차 서슴지 않는 정치권의 태도다.

기준을 세워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기준을 허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논란이 아니다. 기준의 수준 자체를 낮추는 행위이고, 그 파장은 길고 넓게 퍼진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어떤 인물이 나와도 “저 정도면 괜찮네”라는 왜곡된 평가가 자리잡을 것이다. 더 이상 도덕적 잣대나 상식적인 판단은 작동하지 않게 된다.

정치의 힘, 그래서 더 위험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기준을 무너뜨리는 이들이 단순히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갖고 있다. 장관 한 명이 정해지면, 그가 주도하는 정책과 예산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좌우한다. 기준 없는 정치인은, 기준 없는 행정으로 이어지고, 결국 기준 없는 사회가 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기준을 세우고 다듬어야 한다. 하지만 기준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는 의지와 책임감이 있을 때만 유지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부적절한 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 자체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선택할 것인가


이제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사회에 요구하고 있는가? 정치인들이 기준을 낮추려 할 때, 국민은 그 기준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무관심은 방조와 같다. 정치 혐오를 넘어서, 정치에 대한 분명한 기준과 기대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인도 달라진다.

‘기준’은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공동체의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계속해서 유예되고, 훼손되고, 왜곡된다면 그 끝은 무정부적 혼란뿐이다. 정치가 그 기준을 깎아내릴 때, 시민은 그 기준을 붙잡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물려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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